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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안 나가면 이 집 못 팔잖아요"…'이사비 전쟁' 대반전 [돈앤톡]

입력 2026-02-22 07:30   수정 2026-02-22 08:00

"이사비로 1000만원 정도면 충분할 줄 알았죠. 그런데 세입자가 3000만원을 부르더라고요. 요구하는 금액이 너무 과해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부 정책 발표를 보고 바로 부동산에 다시 연락했어요. 이제 위로금 줄 필요가 없게 된 것 같다고요. 세입자에게 주려던 위로금을 차라리 매수자에게 준다는 생각으로, 매매 금액을 낮춰 빨리 처분할 생각입니다."

서울 성북구에 아파트를 보유한 50대 다주택자 A씨는 최근 '이사비 전쟁'을 치렀습니다. 보유세 부담 우려에 집을 매도할 계획을 세웠지만, 세입자가 문제였습니다. 실거주할 매수자를 찾으려면 세입자를 내보내야 했고, 그러려면 거액의 '퇴거 위로금'을 세입자에게 건네야 한다는 게 시장의 암묵적인 룰이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하루아침에 반전됐습니다. 정부가 실거주 의무와 관련한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들면서, 세입자를 낀 이른바 '세 낀 매물'의 거래 물꼬가 트였기 때문입니다.
"3000만원 주느니 안 팔아" 버티던 매도자 '화색'
정부가 입법 예고한 소득세법 시행령 및 부동산거래신고법 시행령의 핵심은 세입자가 있는 주택을 산 매수자에게 실거주 의무를 유예해주는 것입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를 오는 5월 9일 예정대로 종료하는 대신, 토지거래허가제 내에서 거래 조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입니다.

기존에는 실거주 목적으로 집을 사려면 세입자의 퇴거 시점과 매수자의 입주 시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했습니다. 만약 세입자의 계약 시점이 매수자 입주 시점과 맞지 않으면, 매도자가 거액의 이사비를 주고 세입자를 내보내는 상황이 벌어진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매수자가 세입자의 남은 계약 기간을 기다려줬다가, 나중에 들어가 살면 되도록 정책이 유연해졌습니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굳이 세입자에게 거액의 위로금을 제안할 이유가 사라진 셈입니다.

실제로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그동안 세입자가 '나 안 나가면 이 집 못 파는 거 알죠?'라는 식으로 고액의 이사비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아 매도자들이 끙끙 앓았다"며 "정부 발표 이후 매도인들로부터 '이사비 협상을 중단하겠다'는 연락이 오고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장의 수요 변화입니다. 과거에는 실거주가 바로 가능한 '입주 가능 매물'이 귀한 대접을 받으며 몸값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세 낀 매물'을 찾는 매수자들도 늘고 있습니다.

당장 입주하지 않아도 되는 갭투자 수요나, 1~2년 뒤 입주를 계획하는 실수요자들이 초기 자금 부담이 적은 세 낀 매물로 눈을 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실거주 의무 유예로 인해 '일단 사두고 나중에 들어간다'는 전략이 가능해지면서, 매수자와 매도자 사이의 거래 문턱이 낮아졌다는 평가입니다. 당분간 세입자에게 거액의 위로금을 주는 풍경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우린 갈 곳 없는데"…갱신권 무용지물 된 세입자도
반면 세입자들의 표정은 급격히 어두워졌습니다. 임대인이 집을 팔 경우, 전세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현재 시세에 비해 저렴하게 전세를 계약하고, 갱신권을 쓰려고 했던 무주택자들은 원하지 않더라도 계약 기간이 끝나면 이사를 해야만 합니다. 저렴한 전세금을 유지하며 갱신권을 쓰려고 했던 무주택자들은 당장 계약 기간이 끝나면 시세에 맞춘 고액의 전세금을 감당하거나 외곽으로 밀려나야 할 처지입니다.

더 큰 문제는 시장에 나오는 전세 매물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매수자가 나중에 직접 들어와 살기 위해 세 낀 매물을 사들이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시장에 공급되는 순수 전세 물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 흐름을 살펴보면 '전세 대란'이 현실화하는 모습입니다. 아파트 정보 제공 앱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20일을 기준으로 서울 전세 매물은 1만9242건으로 1년 전에 비해 33.6% 급감했습니다. 서울 성북구(-90.7%, 124건)나 관악구(-78.2%, 163건), 중랑구(-72.4%, 96건), 동대문구(-72.1%, 420건) 등 상대적으로 전셋값이 저렴한 곳은 아예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른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로 인해 시장에 나오는 '세 낀 매물'을 무주택자들이 적극적으로 공략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동안 실거주 의무에 묶여 거래가 어려웠던 매물이 일부 시장에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좋은 물건을 매수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전세 매물이 바닥을 보이는 것과 달리 서울 매매 물량은 최근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같은 기간 서울 매매 물량은 6만5416건으로 한 달 전과 비교해 16.5% 증가했습니다. 전세 매물이 아예 없다시피 한 성북구(13.8%)나 관악구(14.2%), 동대문구(22.3%) 등에서도 매매 물건은 늘어났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 전문가는 "세입자 입장에서는 갱신권 행사가 어려워진 불리한 상황인 게 분명하지만,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자에게는 지금이 진입 적기가 될 수 있다"며 "오는 5월 9일까지 계약을 마무리할 경우, 양도세 중과 유예 혜택 등을 보려는 다주택자들의 절세용 급매물을 적극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자금 형편에 맞는 단지를 골라 과감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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