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대체하지 못하는 고숙련 회계사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생각해 공부하고 있어요. 하지만 최근 시험에 합격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문과 계열 졸업생 김모씨(26)의 말이다.
전문직이 아닌 일반 기업 취업으로 방향을 바꾼 이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 취업을 3년째 준비 중인 박모씨(26)는 “공채 대신 수시 채용 비중이 늘고, 공채 간격이 길어지면서 지원 기회 자체가 줄어든 것을 체감한다”며 “외국계, 인턴까지 합하면 100건 넘는 서류를 제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금융권 취준생 이모씨(28)는 “증권사의 경우 정규직뿐 아니라 인턴 활동일지라도 학회 등 관련 활동이 필수적이라 보통 학교 활동 중에 1년을 투입하고 여기에 공인재무분석(CFA) 같은 자격증 취득에는 1년이 소요된다”며 “이런 스펙을 다 갖춰도 직무 세분화 때문에 핏에 맞는 자리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털어놓았다.
24일 한국경제인협회(FKI)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국내 매출액 500대 기업 중 10곳 중 6곳(62.8%)은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하지 못했거나, 채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채용 계획이 없다’고 못 박은 기업 비중(24.8%)은 지난해 하반기보다 7.3%포인트 증가했다.

기존 문과생들이 주로 향했던 업종에서 기업들이 ‘가르쳐서 쓸 인재’보다는 당장 실무 투입이 가능한 ‘경력직 전문직’만을 찾으면서, 인문·사회 계열 졸업생들의 진입 문이 닫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AI는 화이트칼라의 존립을 위협하는 직격탄이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보고서에서 전체 업무의 70% 이상을 자동화할 수 있는 일자리가 39%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단순 제조직보다 고학력 사무직의 자동화 가능성이 더 높게 전망됐다.
전문직도 마찬가지다.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AI가 3년차 어쏘 변호사 정도의 업무를 대체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월 500만원을 주고 신입 변호사를 고용하는 것보다 수십만원을 쓰고 법조 AI 툴을 사용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의 청년들은 아예 구직을 단념하고 ‘그냥 쉬었음’을 선택하거나 단기 일자리를 선택하고 있다. 숙련 기술직으로의 전환이 활발한 해외와 달리, 한국은 기술직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세대교체 지연으로 인해 청년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다. 결국 대기업·전문직이라는 노동시장 진입에 실패한 청년들은 저임금 단기 일자리로 내몰리거나, 아예 경제활동을 중단하는 ‘그냥 쉬었음’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1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비경제활동 인구 중 2030세대 ’그냥 쉬었음‘ 청년은 76만명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20대 그냥 쉬었음 청년은 44만2000명으로 전년 동기(39만6000명)보다 11.62% 급증했다. 또 통계청의 지난해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세대 비정규직 노동자 수는 257만명에 달했다. 지난 10년 새 45만명가량 증가한 것이다. 청년 인구는 줄어드는 데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수가 늘어났다는 것은 청년층 내에서도 정규직 사다리를 타지 못하고 ‘단기·임시직’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러한 취업난의 핵심은학력 인플레로 인한 ‘고학력 공급’와 산업 고도화로 인해 줄어든 ‘양질의 일자리’ 사이의 극심한 미스매치에 있다”며 “AI가 전문직 업무까지 대체하면서 신입 사원이 들어갈 틈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갈 곳 잃은 청년들이 ‘그냥 쉬었음’ 상태로 빠져다는 것은 구조적 한계에 부딪힌 결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라현진 기자 raralan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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