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삼성서울병원에서 암 환자에게 양성자 치료를 할 때 ‘라인 스캐닝’ 기술을 활용하는 비율이다. 연필로 그리듯 정교하게 양성자 빔(펜슬빔)으로 암과 정상 조직 경계를 따라 윤곽선을 그린 뒤 안쪽에 있는 암만 제거한다. 환자 호흡 같은 움직임에 맞춰 짧은 시간에 빔을 쏴야 해 난도가 높다. 삼성서울병원은 2018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 기술을 도입했다. 유정일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사진)는 2022년 수술이 힘든 간암 환자도 이 기술로 양성자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국제 학계에 알렸다. 양성자 치료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그는 “3차원(3D) 프린팅을 하듯 암 모양만 따라 없애 주변 장기 보호 효과가 크지만 호흡 등 변수를 통제하는 게 관건이었다”며 “안전하고 유용하게 이 치료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세계 의학계에 입증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양성자 등 방사선 치료로 간암, 췌장암 등을 고치는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다. 삼성서울병원이 국립암센터에 이어 국내 두 번째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한 것은 2015년 12월이다. 치료를 본격화한 것은 2016년, 올해로 10년이 됐다. 치료 환자는 지난해까지 누적 8183명이었다. 치료 횟수는 10만 건이 넘는다. 유 교수는 박희철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가 주치의로 첫 환자를 치료하던 때부터 역사를 함께 써왔다.
간암은 방사선 치료가 까다로운 암종이다. 주로 쓰이는 엑스레이는 에너지가 세포를 투과한다. 암에 도달한 뒤 몸 밖으로 빠져나갈 때까지 조직 앞뒤 정상 세포도 망가질 수 있다. 간암 환자는 남은 정상 간 조직의 기능을 잘 보존해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과거 간암 치료에 방사선이 폭넓게 활용되지 못했던 이유다.
양성자 치료는 수소 원자를 빛의 60~70% 속도로 가속시켜 생긴 에너지로 암을 없앤다. 1~2주간 5~10회 치료한다. 엑스레이와의 차이는 암세포 부위에서 에너지가 최대치로 올라간 뒤 바로 사라지는 ‘브래그 피크’현상이다. 정상 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어 개발 초기엔 ‘꿈의 암 치료 기술’로 불렸다.
호흡 동조와 라인 스캐닝 기술은 세계 최고다. 엑스레이를 이용한 방사선 치료 때부터 20여 년 넘게 쌓은 노하우를 양성자 치료에 이식한 덕분이다. 방사선 치료를 할 때도 환자는 계속 숨을 쉰다. 간은 숨을 쉴 때 움직이는 폐와 가까이 있다. 간암 모양이 시시각각 달라진다는 의미다. 호흡 동조 기술은 환자의 들숨 날숨에 따라 달라지는 간의 모양을 순간적으로 예측해 양성자 등을 조사하는 방법이다. 이 병원에선 치료 전 4차원(4D) 특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 암과 주변 장기 움직임을 미리 파악한다. 환자가 숨을 어떻게 쉬는지 미리 학습시킨다. 양성자 치료를 할 때 예측 가능한 장기 모양이 유지되도록 환자 맞춤형 호흡법을 찾아 교육한다. 치료에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호흡 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미리 제시한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는지 확인하고 빔을 쏜다.
브레그 피크 구간은 1㎝ 정도다. 순간적으로 핵폭탄처럼 높은 에너지를 내는 양성자의 조사 부위가 달라지면 환자에겐 치명적일 수 있다. 미리 교육한 호흡법으로 숨을 쉬지 못하는 환자는 엑스레이 등 다른 치료를 권유한다.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뿐 아니라 간호사, 방사선사, 의학물리사, 엔지니어 등 전문가들이 ‘한 팀’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치료다. 해외 의료진도 수시로 이 병원을 찾아 치료법을 배우고 돌아간다. 최근엔 스페인 유명 병원 전공의들이 참관차 방문했다.
효과 좋은 치료지만 여전히 환자의 10%가량은 양성자가 잘 듣지 않는다. 최근엔 이런 ‘방사선 저항성’에 영향을 주는 생체 지표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췌장암 환자의 전신 건강 상태를 고려한 치료 방침도 마련했다. 양성자 치료와 색전술, 면역항암제 등을 어떤 환자에게 적용해야 생존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지 파악해 표준 치료법을 정립하는 연구에도 나섰다. 유 교수는 “치료 횟수를 줄이면서도 효과를 높이는 게 목표”라며 “양성자 치료가 잘 듣는 환자를 선별하고, 방사선으로 면역항암제 반응률을 높이는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양성자 치료도 만능은 아니다. 전이암 환자에게 적용하는 데는 제약이 크다. 여전히 항암 치료를 먼저 고려한다. 치료 범위에 위장관이 포함될 때도 마찬가지다. 치료 전 예상한 암의 위치 등이 실제 환자 몸속 모습과 다를 수 있어서다. 유 교수는 “다학제 접근으로 암 환자 생존율을 높이고 양성자 등 입자선 치료의 세계 표준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 약력
2005년 차의과학대 졸업
2018년 성균관대 의대 박사
2019년~ 삼성서울병원 방사선종양학과 교수
2007년 대한방사선종양학회 젊은 연구자상
2015년 대한암학회 로슈 학술상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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