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통상 정책인 '상호관세'에 대해 위법 판결을 내렸지만, 한국 수출 전선에 불던 찬바람이 가시진 않을 전망이다. 법원이 일방적 관세 부과 권한에 제동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즉각 '무역법 122조' 등 대체 수단을 동원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15%의 상호관세가 사라진 자리에 10%의 글로벌 관세가 들어서는 '간판 바꿔 달기'식이 될 가능성도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의 셈법은 당분간 더 복잡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판결 직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존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번 합의가 단순한 '관세-투자' 교환을 넘어 안보, 공급망, 원자력 협정 등 한미 관계의 핵심 현안들과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고 설명한다.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할 경우 발생할 미 정부의 외교·안보적 리스크를 고려한다면 한국이 이를 파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동차(15%)·철강(50%)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고율 관세가 이미 적용 중이다. 반도체의 경우 아직 품목관세가 매겨진 건 아니지만, 미국의 '자국 생산' 압박이 거세지는 분야다.
일반기계나 석유제품 등이 상호관세가 폐지되면 일부 숨통이 트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대미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주력 품목은 품목관세라 상호관세 폐지 여부와 상관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기존 상호관세가 특정 국가를 겨냥한 '보복' 성격이었다면, 122조는 '국제지불 불균형 해소'를 명분으로 내세운 10% 글로벌 관세 형태가 될 전망이다. 결국 이름표만 바뀌었을 뿐, 한국산 제품 전반에 대한 관세 압박은 유지되는 셈이다.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우회하면서도 실질적인 관세 수입을 유지하려는 트럼프 특유의 변칙 전술로 풀이된다.
앞으로 미 행정부는 특정 국가나 품목을 핀셋으로 집어내는 '정밀 타격식 관세'를 병행해 전체 수입 규모를 통제하고 관세 수입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와 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해야 할 법적 논리가 더욱 파편화되고 까다로워질 수 있는 셈이다.
물론 미 정부가 파괴적인 금수조치 권한을 꺼내들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하지만 이는 한국이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대미 투자 약속 등 기존 합의 이행을 거부할 경우 언제든 휘두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몽둥이'라는 점을 공개한 것으로 해석된다.
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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