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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연구용역 한 건 없이 추진되는 근로자 추정제

입력 2026-02-22 17:17   수정 2026-02-23 00:11

“해당 내역이 없습니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22일 고용노동부에 ‘근로자 추정제와 관련한 연구용역 내역을 제출해달라’고 요구하자 돌아온 한 줄 답변이다. 870만 명에 달하는 플랫폼·특수고용직 종사자와 소상공인 수십만 명에게 영향을 줄 ‘근로자 추정제’를 추진하면서 제도 내용이나 파급효과를 분석한 연구용역 보고서가 없다는 의미다. 고용 행정이 세밀한 정책 설계보다 속도전에 매몰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노동절(5월 1일) 전에 도입을 공언하고 있는 근로자 추정제의 핵심은 ‘입증 책임 전환’이다. 현행법 체계에서는 배달라이더, 웹툰 작가 등이 근로기준법 혜택을 받으려면 스스로 근로자임을 증명해야 했다. 하지만 추정제가 도입되면 이들을 일단 근로자로 ‘추정’하고, 사업주가 “이 사람은 자영업자이지 근로자가 아니다”라는 반대 증거를 대지 못하면 곧바로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등의 적용을 받는다.

영세 플랫폼 업체나 소상공인에게는 경영 존폐를 가를 수 있는 ‘비용 폭탄’이다.

문제는 근로기준법 규정 중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에 근로제 추정제를 적용할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근로자에게는 퇴직금 지급, 4대 보험 가입, 연차 유급휴가 및 주휴수당 지급, 해고 제한 등이 적용된다. 하지만 원할 때 쉬는 프리랜서 근로자에게 ‘주 52시간’ 제한과 ‘4시간마다 30분 휴게시간’ 등의 규제를 적용하는 게 법적 정합성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이준희 광운대 법학부 교수는 지난 10일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토론회에서 “현행 근로기준법은 사용자 지휘 아래 ‘연속적·지속적’으로 일하는 ‘근로자’를 모델로 한다”며 “(프리랜서가) 근로자로 추정된다면 근로기준법 중 어떤 조항이 적용될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단 도입하고 보자’는 식의 추정제는 결국 모든 갈등을 법정으로 끌고 갈 공산이 크다. 정부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쟁점이 노동위원회 판정과 법원 판결에 맡겨지면서 현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많은 근로자의 삶과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는 노동 입법은 보통 치열한 검증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다. 해외 사례를 살피고 산업계에 미칠 비용 편익을 시뮬레이션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 정책은 ‘선의’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870만 명의 삶을 담보로 한 정책이라면 보호받아야 할 종사자의 권익만큼이나 제도가 가져올 산업 생태계 변화를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기초적인 연구조차 없이 정책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제도를 끼워 맞추는 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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