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본점 6층. 라코스테와 빈폴 매장 사이 벽면에 가로·세로 약 1m 크기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었다. 별다른 연출이 없던 매장 경계 구간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 것이다. 작품 앞을 지나는 고객 일부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감상하거나 설명문을 읽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백화점들이 이처럼 '아트 마케팅'에 나선 것은 이커머스 성장에 밀려 오프라인 업황이 둔화한 가운데 단순 판매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해 고객 발길을 붙잡겠다는 구상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 업계는 최근 예술 작품을 활용한 아트 마케팅을 확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지난 13일부터 주요 쇼핑 동선과 연결 통로에 정그림, 이건우 작가의 작품 19점을 전시했다. 벽에 거는 그림뿐 아니라 입체적인 조형물도 함께 배치해 고객 시선이 더 오래 머물도록 했다. 잠실점에서도 에비뉴엘 6층에 이대원, 윤중식, 권옥연 등 1970~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그림 6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더현대서울 6층에서 전시 공간 '알트원'을 운영하며 유명 작가들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체코 출신 화가 알폰스 무하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체코 수교 35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는 체코 정부가 국가 문화재 국보급 작품 11점의 해외 반출을 특별 승인하면서 희소성을 더했다. 전시 개막 이후 누적 관람객이 7만명을 넘길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달부터 신세계갤러리 청담에서 일본 작가 키네의 작품전을 진행하고 있다. 미공개 작품 50여점을 포함한 대표작을 선보이며 국내에서 열린 키네 전시 중 최대 규모로 마련했다. 본점 3층에서도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그웬달 르 벡과 니나 콜치츠카이아의 2인전도 열고 있다.

백화점 업계가 문화예술 영역에 힘을 쏟는 것은 코로나19를 거치며 온라인 채널이 급격히 성장한 것에 비해 오프라인 업황은 둔화한 상황에서 나온 타개책이라 할 수 있다.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5년 주요 유통업체 동향'을 보면 지난해 전체 유통업체 매출 중 온라인 부문 비중은 59%로 전년(2024년) 대비 2.6%포인트 상승했다. 2020년 이후 5년 연속 증가하며 오프라인 채널과의 격차를 벌리는 추세다.
단순히 물건만 팔아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자 백화점은 이커머스에선 하기 어려운 '경험적 가치'에 주목했다. 오프라인만의 장점을 살리고 고객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최근 백화점 업계가 이색 팝업스토어를 연달아 진행하고 식음(F&B) 매장을 재단장하는 흐름 역시 같은 맥락이다.
특히 예술 영역은 백화점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최근 전시 문화를 즐기는 MZ(밀레니얼+Z)세대 수요까지 확보할 수 있는 킬러콘텐츠인 셈.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오프라인 방문 경험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 내 전시회·박물관 등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0대가 68%로 가장 높았고, 20대가 65%로 뒤를 이었다.
미래 고객을 확보해야 하는 백화점 입장에선 예술이 가진 프리미엄 이미지를 통해 '큰손' 고객을 유인하는 동시에 전시 소비에 적극적인 2030 세대까지 아우를 수 있는 셈이다.
관련 시장도 중장기적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지원경영센터가 발간한 '2025 미술시장조사'에 의하면 2024년 국내 미술 시장 거래액은 약 6151억원으로 집계됐다. 팬데믹이 본격화하기 시박한 2020년(3849억원)과 비교했을 때 4년 만에 약 59.8% 급증했다. 코로나19 당시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따른 기저 효과로 최근 거래액은 감소했으나 전반적 시장 규모와 수요는 종전보다 커졌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커머스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백화점이 상품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백화점이란 공간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백화점이 지향하는 프리미엄 이미지와 맞닿아 있는 예술을 통해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수림 한경닷컴 기자 paksr36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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