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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잡겠다더니 파산…6.5조 빚더미 떠안고 몰락한 회사 [강경주의 테크X]

입력 2026-02-24 11:46   수정 2026-02-24 13:57


과거 일본 메모리 반도체의 희망으로 불리던 엘피다는 도시바, 히타치, NEC의 D램 사업을 통합해 1999년 출범했다. 일본 정부는 엘피다를 'D램 국가대표'로 키워 삼성전자와 정면 승부를 기대했다. 하지만 2012년 2월 엘피다는 파산했고, 일본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파산 시점은 반도체 업황이 최악이었던 시기와 겹친다. K반도체도 고대역폭메모리(HBM)의 호황에 취해있기 보다 과감하게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인재 육성과 금융 지원 전략을 촘촘히 마련하는 등 다음 반도체 다운 사이클을 미리 대비해야 엘피다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제언이 나온다.
반도체 다운 사이클에 투자 멈춘 엘피다
24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과 대만에 밀리기 시작한 일본은 도시바, 히타치, NEC의 D램 사업을 통합해 반도체 경쟁력을 회복하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1999년 엘피다를 출범시켰다. 당시 엘피다는 세계 3위권 D램 업체였고, 서버·그래픽용 범용 D램과 미세공정 기술에서 경쟁력을 유지했다. 2003년에는 미쓰비시의 D램 사업까지 인수했고, 이듬해엔 도쿄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2006년에는 후공정 전문 자회사인 아키다엘피다까지 설립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경영실적도 흑자가 계속 이어질 만큼 괜찮았다. "기술력만 놓고 보면 엘피다가 삼성전자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엘피다가 하락세의 길을 걷게 된 시기는 2007년.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반도체 사이클' 중 불황을 의미하는 다운 사이클이 시작되면서다. 엘피다는 2007년 2분기에 첫 적자를 기록하더니 2008년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연 1779억엔의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2009년 공적자금 300억엔을 지원했고 채권단도 1000억엔을 엘피다에 쏟아부었다. 외부 수혈에 힘입어 엘피다는 2009~2010년 반짝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1년 다시 불어닥친 D램 가격 하락은 엘피다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2011년에는 실적 급감으로 차입금 상환마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2012년 2월 엘피다는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부채 규모는 약 4480억엔. 당시 환율 기준 약 6조5000억원에 달했다.

엘피다가 파산하기 직전인 2011년의 글로벌 반도체 사이클은 역대 최악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PC 수요가 급감해 D램 평균판매가격(ASP)은 2008년 3달러 수준에서 2011년 말에는 0.5달러 이하로 곤두박질쳤다. 엘피다는 다운 사이클을 정면으로 맞았다. 특히 치명적이었던 것은 제품 포트폴리오였다. 2000년대 중반 시기는 스마트폰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점이었다. 엘피다는 PC용 D램 비중이 높았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모바일 D램 전략이 부재했고 범용 D램 의존도를 줄이지 못했다. 기술 개발 자체는 진행됐지만 대규모 양산과 고객 다변화 단계로 이어지지 못했다. 실적 악화를 우려한 엘피다는 투자를 피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다운 사이클 시기에도 거액의 R&D 투자를 지속했다. 재무 임원들의 만류에도 고(故)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은 투자 확대를 고집했다. 업황은 최악이었지만 미세공정 전환과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다음 사이클의 주도권을 선점하겠다는 이 전 회장의 판단이 있었다. 삼성전자는 미세공정 전환을 통해 원가를 낮췄고 낸드플래시와 스마트폰 사업도 직접 나서고 있기 때문에 시장 상황 악화에 실적이 좌우되지 않았다. 엘피다의 파산보호 신청 다음날 요미우리신문은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한 탓에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반도체 기업이 신흥강자(삼성전자)에게 패배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의 소극적인 지원이 엘피다 파산 부추겨
전문가들은 엘피다 파산의 또 다른 주요 원인으로 정부 정책의 실패를 꼽는다. 엘피다는 2000년대 후반 5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 40나노 공정 전환을 추진했지만 투자 재원을 대부분 차입에 의존했다. 금융위기 이후 일본 은행권이 위험 자산을 축소하면서 엘피다의 자금 조달 비용은 급격히 상승했고, 엔고까지 겹치며 수익성이 붕괴됐다. 일본 정부는 지원에 나섰지만 방식이 문제였다. 정부 지원은 주로 단기 운전자금과 보증 형태였다. '불황을 버티는 자본'이 아니라 '당장의 연명 자금'에 가까웠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사이클이 보통 4년 주기로 반복되지만 엘피다에 제공된 지원은 분기 단위의 관리에 머물렀다"며 "국가가 반도체라는 전략 산업 앞에서 주판을 너무 굴렸던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 금융권 간 역할 분담 속에서 반도체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관리했다. 적자 국면에서도 설비투자와 R&D가 지속될 수 있도록 금융과 정책이 뒷받침됐다. 반면 엘피다는 시장 논리와 산업 논리 사이에서 어느 쪽에서도 보호막을 얻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개입을 주저했고 금융권은 리스크를 회피했다. 당시 산케이신문은 "엘피다의 경영 파탄으로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전성기 때 모습으로 부활시켜 한국에 대항하려던 일본 정부의 의도가 완전히 좌절됐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업계 관계자는 "D램 산업은 초자본집약 산업"이라며 "한 세대 앞서기 위해 수십조 원의 선제 투자가 필수인데, 그 투자는 불황기일수록 더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엘피다 파산 이후 일본 정부는 반도체 산업 회복을 '잃어버린 30년'의 최대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세워진 라피더스는 2022년 도요타, 소니, 키옥시아, NTT, 소프트뱅크, NEC, 덴소, 미쓰비시UFJ은행 등 일본 주요 기업 8곳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라피더스를 "메이지 이후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첨단 산업 프로젝트"라고 의미를 부여하며 정부 보조금과 출자, 채무보증을 통해 대규모 지원에 나섰다.

라피더스의 목표는 기존 일본 반도체 기업들이 40나노 수준에서 정체돼 있는 상황을 넘어 2나노 이하의 첨단 파운드리 기술을 확보하고 2027년 양산에 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 정부는 라피더스에 지금까지 약 1조7000억엔(약 16조6000억원)을 투입했다. 향후 추가 지원과 법정 채무보증 등 총 2조9000억엔(약 27조3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할 계획이다. 또 2030년까지 AI·반도체 분야에 10조엔(약 90조원) 이상을 공적자금으로 지원한다는 전례 없는 정책을 공식화했다. 엘피다처럼 단기 지원에 그치지 않고 반도체를 경제 안보의 핵심으로 여기겠단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엘피다의 몰락은 기술이 없어서 무너진 것이 아니라 사이클 하강기에 버틸 자본력과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엘피다의 몰락은 반도체 산업이 왜 업황 사이클을 이해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며 "한국도 HBM 초호황에 취해있을 것이 아니라 다음 다운사이클을 전제로 공정과 소재, 패키징, 정책, 금융 지원 등 전반에 걸친 10년 로드맵과 과감한 지속 투자를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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