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을 이유로 미국과의 기존 무역합의를 번복하는 국가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SNS에 “어떤 나라든 대법원의 터무니없는 결정으로 장난을 치고자 한다면, 특히 수년, 수십년 간 미국을 뜯어 먹어온 곳은, 그들이 최근에 동의했던 것보다 더 높은 관세와, 그보다 더 나쁜 것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게시물에선 “대통령으로서, 나는 관세 승인을 받기 위해 의회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다”며 무역법과 무역확장법 등에 근거한 관세 부과가 대통령 권한으로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법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후 부과하겠다고 한 ‘글로벌 관세’는 미 동부시간 24일 오전 0시 1분(한국시간 24일 오후 2시 1분)에 발효됐다. 일단 지난 20일 행정명령 서명대로 10%가 적용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관세를 15%로 올리겠다고 예고한만큼 조만간 행정명령이나 포고문을 통해 15%로 오를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글로벌 관세와 함께 무역법 301조를 통한 불공정 무역국에 대한 관세 부과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라 품목관세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3일 트럼프 정부가 국가안보를 명분 삼아 대형 배터리, 주철 및 철제부품, 플라스틱 배관, 산업용 화학물질, 전력망, 통신장비 총 6개 분야에 새 관세를 도입하려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품목관세 형태가 유력하다.
품목관세 부과를 위해서는 상무부가 각 품목이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최장 270일이 소요되지만 지난해 트럼프 정부 출범 후 도입된 품목관세는 조사기간이 상당히 단축되는 경향이 있었다.
트럼프 정부는 또 품목관세의 실제 강도를 높이기 위해 계산법을 바꾸는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예컨대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계산할 때 지금은 해당 원재료가 전체 제품 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비례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앞으로는 금속 함량에 따라 차등 관세율을 적용하되 이를 제품가격 전체에 적용해서 관세 납부 금액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방식이 추진되고 있다고 이 신문은 소개했다.
품목관세는 법적 안정성이 높은 관세로 분류된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철강관세를 도입한 경험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1년간 자동차·목재·구리 등으로 영역을 넓혀 왔다.
하지만 반도체 관세와 의약품 관세는 여러 차례 예고만 되고 실제 도입시점은 계속 미뤄지는 중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1월 반도체 관세 25%를 도입했으나 이는 특수한 영역에만 적용되고 실제로는 엔비디아의 대중 수출 과정에서 통행세를 거두려는 목적이 컸다. 한국 기업들이 영향을 받는 일반적인 반도체 관세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휴대폰과 노트북 등 전자기기도 반도체 관세 부과 대상으로 분류해서 중국산 아이폰 등은 지금까지 상호관세 등의 영향을 받지 않고 미국에 수입되고 있다.
이는 301조 발동 방식이 특정 기업이나 산업 분야의 피해를 먼저 계산한 다음 상응하는 보복을 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상대국에 통지하고 공청회를 거치는 등 여러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일단 도입되면 최고세율 등 제한이 없다. 조 바이든 전 미국 행정부는 무역법 301조를 이용해 중국산 전기차에 100% 관세를 부과하는 등 대중관세 수준을 상향했다. 트로이 스탠가론 전 우드로윌슨센터 한국역사·공공정책센터 국장은 “한국에 대해서도 일단 조사 결과 관세 부과가 시작되면 IEEPA만큼 자유롭지는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 안보를 이유로 든 IEEPA와 달리 무역법 301조는 ‘피해의 정도’를 따진다.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가인 만큼 문제가 되는 것은 비관세장벽이다. 미국이 판단하는 한국의 비관세장벽으로 인한 피해 규모가 크다고 주장해야만 높은 관세율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조다.
이와 관련해 케이트 칼루트키에비치 맥라티 이사는 이날 한미경제연구소(KEI) 주최 대담에서 “트럼프 정부가 비관세 장벽을 어떻게 조사하고 평가하느냐에 달린 문제”라고 지적했다. 피터 해럴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한국에 대한 15% 관세 부과를 유지하고자 한다면 많은 불공정 관행을 조사해야 하지만, 아마도 그들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해럴 연구원은 그러나 “예를 들어 60% 같은 급격히 높은 관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정당화할 만큼의 피해를 입증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사 및 실행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내키는 대로 관세율을 조정하기 쉽지 않은 것도 특징이다.
한편 미국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새 관세 체제가 도입되기 전 전 세계에 부과하기로 한 글로벌 관세의 기한을 연장하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올 여름 트럼프 (글로벌) 관세가 만료됐을 때 이를 연장하려는 어떤 시도든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의회 동의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글로벌 관세를 선포해서 또 다시 150일을 추가하는 ‘꼼수’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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