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서 인공지능(AI)으로 전력 수급을 실시간 계산하고 시간대별 요금을 유연하게 설계하는 영국 옥토퍼스에너지 같은 스마트 소매 모델이 자리 잡기엔 제도적 기반이 미흡하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전력이 독점하는 소매시장 구조와 원가 이하의 요금체계가 가장 큰 걸림돌로 지목된다.
에너지 데이터 전문 기업인 인코어드의 이효섭 소장은 “해외는 소매사업자에게 전력 시스템 데이터가 공개되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지만 경쟁 구조가 없는 상태라면 데이터 개방만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종규 60헤르츠 대표도 “더 큰 혁신이 나타나려면 소매시장에 경쟁 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했다.
전기요금이 먼저 정상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요금 정상화 없이 민간 사업자가 수익을 낼 수 있는 ‘마진 공간’이 작다는 점에서다. 정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옥토퍼스 같은 기업들은 전력 가격의 변동성을 활용해 수익을 내는데, 우리처럼 요금이 정책적으로 눌려 있고 원가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런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전보다 비싸면 소비자가 외면하고, 싸게 팔면 즉시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에서는 혁신 기업이 생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2016년 KT 등 통신사가 아파트 단위 전기·통신 결합형 소매 모델을 검토하다가 철수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 교수는 “전기요금을 실제 투입되는 비용 수준으로 맞추는 게 먼저”라며 “도매가격 급등락으로 인한 소매사업자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금융 헤징 수단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자가 수익을 내기 어려우면 소매시장을 개방해도 민간 사업자들이 수익이 되는 대기업·데이터센터 등 우량 고객만 골라가고, 도서·산간 수요는 한전에 남아 공공 부담이 커질 것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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