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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파라오 미라로 산 파라오를 지키다…이집트의 ‘유물 정치학’

입력 2026-02-24 13:47   수정 2026-02-24 13:48



이달 초 찾은 이집트 카이로의 이집트문명박물관(NMEC) 로비. 수많은 관람객이 오가는 통로 뒤편에서 영상 하나가 반복 상영되고 있었다. 2021년 4월 3일 열린 NMEC 건립 기념 행사 ‘파라오의 황금 퍼레이드’ 장면이었다. 당시 이집트 정부는 구(舊) 카이로 박물관에 있던 미라 22구를 약 5km 떨어진 이곳으로 옮기며 화려한 퍼레이드를 펼쳤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장엄한 연주 속에 예포가 발사되고, 고대 이집트 전통 의상을 입은 행렬이 줄을 이었다.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미라 행렬이 박물관 앞에 도착하자, 2014년부터 집권 중인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차렷 자세로 ‘선배 파라오’들에게 예를 표했다. 현지 가이드는 “수많은 국민이 이 장면에 열광했다”고 설명했다. 이집트 정부가 고대 문명의 유산을 어떻게 정치적·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이집트에서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부분의 기간 군사정권 체제가 유지돼 왔다. 권위주의 정부답게 이집트는 국가 이미지 제고에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고, 고대 이집트를 그 핵심으로 삼았다.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당기는 확실한 돈줄이면서 국민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 탁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약 11억~12억달러(약 1조60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들여 이집트대박물관(GEM)을 지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집트 경제는 취약한 산업 구조와 사막화 등 여러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1억2000만명에 달하는 인구에도 불구하고 GDP(국내총생산)는 약 3473억달러로, 한국의 5분의 1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정부는 GEM 건립 예산의 70% 가량(약 8억달러)을 일본에서 빌리면서까지 건설을 강행했다. GEM 건설이 정권의 존립 기반을 강화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구 거대 박물관에 뒤지지 않는 세련된 방식으로 국가의 역사적 자부심을 ‘상품화’하고 ‘브랜딩’하겠다는 게 이집트 정부의 강력한 의지다. 현대미술과의 시너지 효과도 주요 전략 중 하나다. 지난 1월 GEM에서는 ‘아트 카이로’ 아트페어가 열렸다. 아프리카·중동 지역에 영향력이 큰 이집트의 국제미술제 ‘포에버 이즈 나우’에 기획자로 참여한 이규현 이앤아트 대표는 “피라미드 같은 압도적인 문화유산과 함께 현대미술을 전시한 덕분에 작가와 관객 모두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며 “미술에 대한 현지 부유층의 관심이 늘고 있어 신흥 미술 시장으로서도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했다.




다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대표적인 게 고질적인 관료주의와 부패 문제다. 현지 관계자는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면 당국에서 은근히 뇌물을 요구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기자 역시 당국 관계자로부터 “취재 협조를 원하면 수수료(급행료)를 달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받았다. 세계 대도시 중 최악 수준의 대기질, 차선 구분 없는 도로 위에서 24시간 울려 퍼지는 경적 소리 등 관광객의 피로도를 높이는 요인이 많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카이로=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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