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와 신발 등을 전문적으로 파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들의 폭발적인 성장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과거처럼 특정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만으로 연 매출 1000억원을 넘기는 대형 브랜드로 성장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영향이다. 패션 플랫폼 간의 경쟁 축은 이제 단순한 물건 중개 수수료 싸움을 넘어 누가 더 강력한 자체 브랜드와 오프라인 매장을 확보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다. 온라인 중개 모델에만 의존하던 기존 사업 방식은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에 놓였다.5일 유통·패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패션 시장 거래액은 37조4030억원으로 재작년(2024년)보다 1.3% 늘어나는 데 그쳤다. 연도별 거래액 증가율은 코로나 사태 직후였던 2020년과 2021년에는 10%를 훌쩍 넘었으나 2023년 4.3%로 확연히 둔화했다. 특히 2024년에는 거래액이 36조9265억원으로 전년 대비 감소하며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1.1%)을 기록하기도 했다.
성장 정체의 가장 큰 원인은 시장을 이끌 ‘스타 브랜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과거 패션 플랫폼은 ‘대박 브랜드’를 배출하며 함께 성장했다. 무신사의 ‘커버낫’(COVERNAT)이 대표적이다. 커버낫은 입점 초기 소형 인디 브랜드에 불과했지만 무신사의 지원을 받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2021년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1500억원을 웃도는 등 ‘메가 브랜드’ 반열에 올랐다. 이후 ‘디스이즈네버댓’·‘마르디 메크르디’·‘왓잇이즈엔’ 등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다른 플랫폼에서도 지그재그의 ‘아뜨랑스’, W컨셉의 ‘앤더슨벨’과 ‘렉토’ 등이 스타 브랜드로 이름을 올렸다.
요즘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메가 브랜드의 계보가 뚝 끊겼다. 한 온라인 패션 플랫폼 관계자는 “요즘은 1000억원은커녕 500억원을 넘기는 브랜드도 없다”며 “잘되는 브랜드 대다수가 연 매출 100억~200억원 수준에 갇혀 있다”고 전했다. 신흥 인디 브랜드가 너무 많아졌고 패션 플랫폼도 계속 늘어 수요가 분산됐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에는 특정 플랫폼에 입점하는 것만으로 매출이 확 뛰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인공지능(AI) 도구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품질과 가격을 비교하는 ‘똑똑한 소비자’가 늘고 취향이 파편화하면서 브랜드 충성도가 예전만 못하다”고 진단했다.
플랫폼들의 수익 구조도 악화하고 있다. 패션 플랫폼은 제품 판매 시 약 25~30%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데 이 수수료를 고스란히 쿠폰 할인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규 브랜드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여력이 줄었다. 에이블리의 경우 2024년 매출 3342억원을 올리고도 154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광고 선전비를 전년(266억원) 대비 59%나 늘린 423억원이나 쓴 것이 수익성에 부담을 줬다. W컨셉의 2024년 매출은 1169억원으로 전년 대비 약 20% 감소했다. 카카오스타일은 지난해 매출 2004억원을 기록하며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으나 거래액 대비 수익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플랫폼들은 자체 브랜드(PB)를 키우고 오프라인으로 진출하는 것에서 활로를 찾고 있다. 무신사는 ‘무신사 스탠다드’를 앞세워 오프라인 매장을 전국 거점으로 확장하고 있다. 단순히 남의 브랜드를 중개하는 플랫폼을 넘어 직접 제조와 유통을 담당하는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 브랜드 운영사로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무신사는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온라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하고하우스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에 치중했던 과거를 버리고 현재 ‘마뗑킴’, ‘드파운드’ 등 40여 개의 유망 브랜드를 보유한 브랜드 인큐베이팅(육성) 기업으로 거듭났다. 특히 2021년 인수 당시 매장이 1개뿐이었던 마뗑킴은 3년 반 만에 오프라인 매장을 170개까지 늘리며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하고하우스는 유망한 브랜드를 발굴해 자본과 오프라인 유통망을 지원하고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수익 모델을 완전히 재편했다.
에이블리는 기술력과 카테고리 확장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자체 개발한 ‘AI 개인화 추천 기술’을 통해 중소 뷰티 브랜드를 발굴하는 인큐베이터 역할을 수행 중이다. 최근 3개월간 에이블리 내 상위 15개 인디 뷰티 브랜드의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0% 증가했다. ‘네이밍’·‘투에이엔’·‘파넬’ 등의 브랜드가 에이블리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팬덤을 쌓으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934만명에 달하는 월간 사용자 수를 기반으로 브랜드와 타깃 고객을 정확히 연결해 주는 모델이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주목받고 있다.
패션업계에선 향후 패션 플랫폼 시장이 미국처럼 ‘자사몰’ 위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마존 같은 종합몰 외에 패션 전문 플랫폼이 거의 없는 미국처럼 각 브랜드가 자체 온라인몰인 D2C(소비자 직접 판매)를 통해 직접 판매하는 형태가 주류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러 브랜드를 모아 파는 플랫폼의 시대가 저물고 마뗑킴처럼 강력한 자기 브랜드를 가진 ‘브랜드 하우스’들이 시장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고 말했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