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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 쳐놓고 또…이란 전쟁에 '쿠르드족' 끌어들이는 美 [이상은의 워싱턴나우]

입력 2026-03-05 16:59   수정 2026-03-05 17:02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에 쿠르드족이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독립 성향이 강해 이란 정부와 갈등을 빚어 왔고 자체 민병대를 운용하고 있는 쿠르드족을 끌어들여 이란 내 지상전을 담당시키려 한다는 의혹이 커지는 중이다. 향후 이란이 내전 상태에 돌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라크 및 이란 쿠르드족 단체 고위 관계자들을 인용해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친미 성향의 이란 쿠르드족 세력이 이란으로 진입하기 위한 무장 부대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쿠르드 민병대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내용과 같은 맥락이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4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쿠르드 지도자들과 통화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현재 이란에 지상군을 투입할 계획은 없다고 부인했다. 이미 쿠르드족이 이란 내 진입해서 활동을 시작했다는 폭스뉴스 등의 보도도 있었으나, NYT는 이들이 아직 “미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 붕괴를 원하는 이스라엘은 보다 적극적이다. 이스라엘 정부 당국자는 CNN에 “우리(이스라엘)는 서부 이란에서 활동하는 쿠르드 민병대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민병대가 이란 내 일부 지역을 장악해 정권에 도전하도록 해 더 광범위한 봉기를 유도하는 것이 지원의 목표”라고 말했다.
○ 쿠르드족 “이란 접경에서 대기”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정권에 맞서기 위해 이란과 오랜 갈등관계이고 독립 성향이 강한 쿠르드족 민병대를 활용하는 ‘이이제이’ 전략을 택했다. 직접 지상군을 파병할 경우 입게 될 손실과 내부 비판을 고려해 쿠르드족이 대신 전투를 치르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미국이 쿠르드족을 이용한 후 배신한 전력이 여러 차례 있는 만큼, 실제 이들이 어느 정도나 적극적으로 전투를 맡을지는 알 수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라크 북부에 있는 쿠르드족 자치구역 쿠르디스탄자유당(PAK) 소속 칼릴 나디리는 4일(현지시간) AP통신에 “미국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면서 이 단체 병력의 일부가 술라이마니야 주 이란 접경지역으로 이동해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 쿠르드 지도부와 통화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작전 투입 여부에 대한 보도는 엇갈리고 있다. 폭스뉴스 등은 쿠르드족 전투원 수천 명이 이란으로 건너가 지상 공격작전을 개시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언론인 예루살렘포스트도 수백 명이 이미 이란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레빗 대변인은 “지상전 투입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아지즈 아흐마드 쿠르디스탄 자치구 총리실 부비서실장은 “국경을 넘은 이라크 쿠르드족은 단 한 명도 없다”고 했다. 뉴욕타임스와 AP통신, 악시오스 등도 이들이 아직 이란 내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쿠르드 민병대가 이란 내 전투활동을 시작할 경우 이란 정권이 군과 보안부대 자원을 분산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란 내 주요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대 등에 대한 압력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게 미국과 이스라엘의 계산이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목표는 특정 세력 지원이 아니다”고 했지만 “다른 주체들이 무엇을 하는지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다른 주체’는 쿠르드족에 대한 접촉을 맡고 있는 미국 중앙정보부(CIA)를 뜻한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CNN방송은 CIA가 이란 반정부 집단 및 이라크 내 쿠르드족 지도자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 배신의 역사 잊고 협력할까
쿠르드족은 이란계 산악 민족이다. 오스만제국이 해체된 후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하고 튀르키예·이란·이라크·시리아 등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총 인구 수는 3000만~4000만명 선으로 추산된다. 쿠르드족은 독립된 국가는 아니지만 뚜렷한 민족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런 탓에 각 지역 정부와 갈등을 빚어온 경우가 많다. 특히 이라크 내 쿠르디스탄 자치지역에 수천 명의 병력을 두고 있다.

종교적으로 수니파가 다수인 쿠르드족은 시아파인 이란과 갈등 관계다. 미국과는 협력했다가 배신당하기를 반복한 역사를 갖고 있다. 1920년 쿠르드족이 자치권을 얻기로 했다가 1923년 이 약속이 파기되었을 때 미국은 쿠르드 영토를 현재의 형태로 분할하는 데 동의했다. 미국은 1970년대에 이라크 내 쿠르드 반군을 지원했으나 막상 이라크와 이란이 협정을 맺는 목표를 달성하자 쿠르드족에 대한 지원을 끊어 수천 명이 이라크군에 학살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양상이 반복됐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도 이슬람국가(IS) 세력 격퇴를 위해 쿠르드 민병대를 활용하다가 종국엔 튀르키예의 쿠르드 침공을 허용했다. 2기 정부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아흐마드 알샤라 시리아 대통령과 만난 후 시리아 정부군의 쿠르드족 공격을 사실상 묵인했다.

이런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자치권 확보를 원하는 쿠르드족은 일단 미국과 손을 잡기로 한 모양새다. 이들의 실제 역할이 어느 수위일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산악지형을 잘 알고 있는 쿠르드 민병대의 등장은 이란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전망이다.

이란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국영 이란통신사는 이라크 내 쿠르드족 단체의 본부를 타격하기 위해 미사일 세 발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이란 국영 타스님 통신은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이란 보안부대 관계자들을 인용해 쿠르드 세력의 이란 내 활동 보도는 심리전을 위한 허위 정보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공중 공습과 함께 어뢰를 이용한 공격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헤그세스 장관은 이날 해군 잠수함이 스리랑카 근방 인도양 해역에서 어뢰를 발사해 이란의 호위함인 ‘이리스 데나’를 격침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어뢰 공격을 결정한 것은 2차 세계대전 후 약 80년 만이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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