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최고 방송교향악단인 BBC 심포니의 수석지휘자인 사카리 오라모(60)가 온다. 오라모가 한국에서 지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BBC 심포니의 내한도 13년 만. 이들은 이달 한국에서 다섯 차례 공연한다. 24일 부산콘서트홀 일정을 시작으로 25·26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이어 27일 대전예술의전당, 28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한국 관객을 만난다. 협연자로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함께한다. 손열음은 2024년 영국 런던에서 BBC 심포니와 호흡을 맞췄고, 이번 내한에 앞서 3월 13일 런던에서도 함께 연주한다. 한국에선 악단과 더 가까워진 상태로 연주하는 셈이다.
오라모는 아르떼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BBC 심포니의 정교한 음악을 즐기러 오는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방한에 설렘을 드러냈다. 그와 동향인 핀란드 동료 음악가들이 “한국 관객은 열정적일 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고 귀띔했다고. “BBC 심포니는 영국 전통에 뿌리를 둔 아름다운 음색을 선사할 뿐 아니라 작품에 따라 연주를 끊임없이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악단은 제게 깊고 복잡한 음악적 아이디어를 투영하는 거울과 같아요.”
계약을 마치면 오라모는 악단 첫 지휘자인 에이드리언 볼트 이후 가장 긴 임기를 채우는 수석지휘자가 된다. 그는 13년 넘게 함께해 온 이 악단의 강점을 시스템에서 찾았다. “다른 런던 악단과 달리 BBC 심포니 단원들은 정규직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 덕분에 폭넓은 레퍼토리를 연주하기 위한 충분한 리허설 시간을 할당할 수 있어요. 수석지휘자로 있으면서 전 단원의 따뜻한 마음씨, 단단한 직업윤리, 탁월한 기교에 매번 끊임없이 감탄해 왔습니다.”
핀란드 출신의 오라모는 영국 음악계와 인연이 더 깊다. BBC 심포니를 이끌기 전엔 버밍엄 심포니 음악감독을 1998년부터 2008년까지 11년간 맡았다. 버밍엄 심포니를 지역 악단에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은 사이먼 래틀의 후임으로 가서 부담이 컸을 시기다. 오라모는 “레퍼토리를 넓히는 것만으로도 바빴다”며 “음악적 성장에서 매우 중요했던 때”라고 강조했다. “단원들이 환상적인 지원을 해준 게 기억나네요. 아주 훌륭한 음악적 경험도 몇 번 있었죠. 이 경험 중 일부는 녹음의 형태로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고 있어요.”
그가 꼽는 성공적인 지휘자의 자질은 세 가지다. 탁월한 음악성, 잘 단련된 커뮤니케이션 역량, 복잡한 작품을 빠르면서도 철저하게 습득한 뒤 완성하는 능력이다. 여기에 ‘좋은 체력과 약간의 운’이 따라붙으면 금상첨화라고 했다.
“해석 전통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원전, 즉 악보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은 아름다운 요소와 나쁜 습관이 섞여 있는 겁니다. 전 어떤 레퍼토리에서도 스스로를 전문가로 여기지 않습니다. 물론 같은 핀란드 출신인 시벨리우스는 제 마음속 특별히 가까운 존재지만요.”
오라모는 스톡홀름 왕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하며 스웨덴, 핀란드의 대표 악단을 이끈 경험도 있다. 같은 북유럽으로 묶이지만 두 국가의 음악 문화는 딴판이란다.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에서 콘서트마스터로 시작해 객원지휘자, 수석지휘자 자리를 거치는 과정은 핀란드 출신 지휘자의 전형적인 경로입니다. 스웨덴 음악계는 전통에 더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부터 잘 확립된 기관도 많죠. 반면 핀란드 음악계는 새로운 것에 더 모험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편입니다. 북유럽의 양대 악단과 작업하며 놀란 건 이들이 이웃 국가의 악단에 대해 서로 아는 바가 적고 소통이나 관심도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다채로운 레퍼토리엔 국경을 넘나들며 교류한 음악가들을 이해하려는 오라모의 의도가 담겨 있다. “전 음악을 국가적 전통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는 건 클래식 음악계에서 발휘되는 영향력의 범위입니다. 시대와 스타일을 초월한 얘기죠. 예컨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시벨리우스는 친구 사이였습니다. 1890년대 후반에 이미 슈트라우스가 시벨리우스 곡을 지휘했어요. 후배 음악가들에 관한 의견을 질문받았을 때 시벨리우스는 ‘버르토크가 최고’라고 하기도 했죠. 또 멘델스존 없는 브람스를 상상하기도 어렵잖아요.”
오라모는 최근 끌리는 작곡가로 프랑스의 올리비에 메시앙, 핀란드의 카이야 사리아호, 루마니아 출신인 쿠르타그 죄르지 등을 꼽았다. 시벨리우스, 닐센과 같은 북유럽 작곡가나 엘가 같은 영국 작곡가 등 그가 꾸준히 다뤄온 작품들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인공지능(AI) 시대 클래식 음악의 역할에 대해선 소신을 드러냈다. “AI는 생생한 오케스트라의 경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이나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악보처럼 복잡한 작품을 만들 수도 없어요. 인류 전체의 과제는 AI가 선(善)을 위한 도구로 쓰이도록 하는 것일 뿐 아니라 창조적인 삶에서 AI가 압도적인 힘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