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발간 백서에 따르면 한국에 설립된 외국계 기업은 2024년 기준 1만7000여 개나 된다. 이런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의 특성상 국내 법인이 완전히 독립적인 HR 운영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글로벌 본사나 싱가포르, 홍콩 등지의 아태지역 본부(APAC)로부터 가이드라인을 받아 인사관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여러 해 동안 외국계 기업에 대한 인사노무 자문을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외국계 기업의 국내 인사담당자가 겪는 어려움을 접하여 왔다. 그 어려움이란 '글로벌 HR에게 한국 노동법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글로벌 HR과 대화를 해 보면 글로벌 HR이 한국 노동법을 아예 모르는 경우는 드물고, 해고제한 제도와 퇴직급여제도, 근로시간과 초과근로수당제도 등에 대해서는 상당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어째서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글로벌 HR은 국내 사정을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고, 또 본래 익숙한 개념과 법문화에 기대어 접근을 하기 때문에 실무상 적용에서는 오해하는 부분도 많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그간 필자가 자문을 하면서 자주 겪은 오해의 사례와 그 원인을 짚어보고, 한국 HR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i>#채용과 오퍼레터 문제</i>
먼저 직원을 채용할 때 사용하는 '근로계약서' 문제부터 살펴보자. 외국기업의 경우 간단한 오퍼레터(Offer Letter)를 교부하여 서명을 받고, 입사 후에 정식으로 근로조건을 열거한 근로계약서(Employment Contract)를 따로 체결하면서 채용 절차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글로벌 HR에서는 오퍼레터는 '채용과정'일 뿐, 채용 확정은 아니라고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이러한 오해는 사실 임의해고(At-will termination)가 허용되는 법문화적 배경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법원이나 노동위원회는 대부분의 경우 오퍼레터 교부 및 서명 시에 '채용내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며(서울행정법원 2024. 2. 29. 선고 2023구합50691 판결, 서울지방노동위원회 2024. 6. 5. 2024부해1199 판정 등), 채용 취소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어려운 경우가 많다(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0다25910 판결. 참고로 최근 서울행정법원 2025구합52952 사건에서는 문자로 합격 통보 후 4분 후에 채용 취소를 한 경우에도 부당해고로 인정된 경우가 있다).
즉, 글로벌 HR이 '해고의 어려움'을 추상적으로 인지하고 있더라도, 정작 그 전제가 되는 '채용'이 이미 발생했음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임의해고가 불가함을 상기시키면서 채용과정에서 중요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오퍼레터를 비롯하여 채용확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문건 등은 제공하지 않는 방향으로 글로벌 HR과 협의하는 것이 좋다.
<i>#인센티브 제도 관련 유의사항</i>
다음으로, 외국계 기업 자문을 하면서 또 많이 겪은 오해는 인센티브에 관한 것이다. 외국계 기업 다수는 국내 판매성과를 진작하기 위해 영업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영업 성과급(Sales Incentive)과 같은 인센티브를 운영한다. 외형만 보면 국내 기업의 성과급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는 않지만, 외국계 기업의 경우 두드러지는 부분은 '매우 자세한 인센티브 플랜'이 작성 및 배포되며, 주로 개인 실적 기반으로 세부적인 지급체계(scheme)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모든 국가에서의 통일적 운용(uniformity)을 가능하게 하고, 대상자들에게 명료한 기준(clarity)을 제공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자세한 플랜을 한국에서 도입·배포하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먼저 인센티브 플랜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취업규칙'에 해당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명칭을 불문하고 사용자가 근로자의 인센티브에 대한 기준을 규정한 것이라면 모두 취업규칙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04. 2. 12. 선고 2001다63599 판결). 이렇게 보면 지급방식을 변경할 때마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본래 재량에 따라 운영하려고 했던 인센티브 제도의 취지가 퇴색해 버린다는 것이다. 글로벌 HR은 주로 '인센티브 책정 및 지급은 재량'이라는 유보조항을 두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판례는 유보조항에 근거한 변경 역시 취업규칙변경에 관한 법리가 적용된다고 볼 여지가 크기 때문에(대법원 1996. 4. 26. 선고 94다30638 판결) 유보조항을 두는 것만으로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자세한 지급기준에 관한 플랜을 두는 것은 임금 여부 판단에 있어서 '지급의무성'의 인정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판례에 따르면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①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금품 중 ② 계속적·정기적으로 지급되고 ③ 사용자에게 지급의무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최근 경영성과급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보면 취업규칙 등 내부규정에 지급근거, 지급대상 지급조건 등 지급기준이 미리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는 점이 경영성과급이 임금으로 인정되는데 중요한 원인을 제공한 것을 볼 수 있다(대법원 2026. 1. 29. 선고 2021다248299 판결). 결국 운영의 편의와 기준의 투명성을 위해 도입한 세세한 인센티브 플랜이 퇴직금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세한 플랜은 제공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성과급의 구성 방식도 경영성과에 따른 ‘이익’을 배분하는 방식의 성과급으로 변환하여 '근로대가성'을 낮출 수 있도록 인센티브 지급 방식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i>#저성과자 관리와 ’평가’의 중요성</i>
세 번째로, 저성과자에 대한 관리 및 해고 역시 외국계 기업이 곤란함을 많이 겪는 부분이다. 주지하다시피 대법원은 저성과자 관리를 통한 해고가 적법하려면 (i)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저성과자임이 확인되어야 하고, (ii) 저성과의 정도가 현저하고 장기간이어야 하며, (iii) 저성과자에 대해 교육훈련, 전환배치 등 근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하며, (iv)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거나 개선의 태도를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요구하고 있다(대법원 2021. 2. 25. 선고 2018다253680 판결 등).
그런데 외국계 기업의 글로벌 HR과 대화를 해 보면 이러한 판례 태도 자체는 이미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실제 저성과자 관리를 하는 방식을 보면 단기간의 훈련 내지 특별관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정작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평소 어떻게 해야 인정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저성과자 '관리'에 집중하느라 '저성과자'는 평소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개념이라는 점을 놓치는 것이다. 또한 교육훈련은 비교적 세밀하게 설계하여 실시하였으면서도 개선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해야 한다는 점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위와 같은 대법원 판례의 함의에 대해 글로벌 HR에 명확한 가이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i>#본사 파견 직원과 한국 노동법의 적용 문제</i>
마지막으로, 한국 노동법의 적용 대상인지 여부에 대해 오해를 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외국계 기업은 해외 본사에서 한국법인으로 발령(secondment)을 받아와서 한국에서 근무하는 경우도 많다. 보통 이런 본사 인력은 한국 노동법 적용을 주장하면서 구제 신청이나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최근까지는 이런 본사 인력에게 한국 노동법 적용을 해야 하는지 여부에 관한 고민 자체가 희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 노동법의 보호범위가 생각보다 넓다는 점이 많이 알려지면서 이러한 문제제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더 이상 드물지 않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제사법 제48조 제2항은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아니한 경우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에 따른다고 정하고 있으며, 제1항은 '준거법을 선택하더라도 제2항에 따라 지정되는 준거법 소속 국가의 강행규정에 따라 근로자에게 부여되는 보호를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고용노동부는 위 국제사법 조항 해석과 관련하여 '일상적 노무 제공 국가'를 판단함에 있어서 (i) 전체 근로계약기간 중 해외 근무기간, (ii) 근무장소 및 국내복귀예정 여부(한시적으로 해외에 파견한 경우인지), (iii) 근로계약 체결 장소, (iv) 근로시간 등 노무지휘 및 임금 지급의 주체, (v) 노무제공의 실질적인 수령자, (vi) 법적용에 관한 근로자의 기대나 인식 정도 등을 고려하여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를 판단한다고 보고 있다(근로기준정책과-4248, 2022. 12. 29.).
그런데 한국에서의 근무기간이 상당히 긴 경우나 본사에서 주로 '한국 파견'을 주목적으로 채용하는 경우라면, 위와 같은 판단 기준에 비추어 볼 때 한국이 '일상적 노무제공지'인 경우가 상당수 있다. 따라서 본사 파견 직원이므로 만연히 한국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인사관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위와 같은 기준에 의해 한국 노동법의 적용 가능성을 짚어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위에서 살펴본 사례들의 공통점은 글로벌 HR이 한국 노동법을 '전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해가 자국의 법문화에 기반한 불완전한 것이라는 데 있다. 사실 이러한 간극은 한국 HR 담당자 혼자의 힘으로 메워야 할 부담이라기보다는, 글로벌 HR과의 소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좁혀 나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다만 그 소통이 효과적이려면 '한국법은 다르다'는 막연한 코멘트보다는, 이 글에서 다룬 것처럼 오해의 구체적인 원인과 맥락을 짚어 설명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그러한 소통이 축적될 때 글로벌 HR도 한국 노동법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해 갈 것이고, 결과적으로 국내 법인의 인사관리가 한층 더 컴플라이언스에 부합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종현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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