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사태 여파로 글로벌 물류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도 핵심 공정 소재인 헬륨 가스 수급 불안에 직면한 것으로 파악됐다.
헬륨을 실어나르는 선박들이 중동 지역의 주요 해상 운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통제를 받기 시작하면서 공급망 전반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카타르에 집중돼 있는 공급망을 미국, 러시아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업체들은 지난달 말 발발했던 미국과 이란의 전쟁 이후 헬륨 가스 확보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고, 헬륨을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확장하는 전략까지 타진하고 있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필수적으로 쓰이는 산업용 가스다. 웨이퍼 공정이 진행되는 장비 내부 ‘챔버’에서 공정이 끝난 뒤 잔여 가스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나노미터(㎚·10억 분의 1m)급의 반도체 회로를 만들어내는 반도체 과정 특성 상, 이 과정에는 불순물이 거의 없는 고순도 헬륨이 사용된다. 최대 99.9999%(6N) 순도의 헬륨이 쓰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국내 반도체 헬륨 공급망이 특정 지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헬륨 가스 수입액은 2억 2690만 달러였는데, 이 가운데 64%인 1억 4684만 달러 물량이 카타르에서 건너왔다. 카타르의 뒤를 잇는 수입 국가는 미국인데, 미국 수입액의 비중은 28%로 카타르와 큰 차이가 있다.
또한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고순도 헬륨의 경우 카타르산 비중이 80%에 육박하고, 그나마 미국산과 호주산 제품이 미미하게 쓰이는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헬륨은 카타르에서 생산되는 천연가스를 영하 162℃ 이하로 냉각해 액화천연가스(LNG)를 만드는 과정에서 추출된다. 이 과정에서 LNG 속에 0.1~0.5% 비율로 섞여 있는 헬륨을 분리해 확보할 수 있다. 이 헬륨을 카타르에서 가져와 반도체용으로 고순도 정제하는 작업은 한국에서 이뤄진다.
한국의 반도체용 헬륨 공급망을 살펴보면 린데, 에어프로덕츠, 에어리퀴드 등 세계 최대 가스 업체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이들은 헬륨 원료를 카타르에서 사와서 한국 지사로 넘기고, 한국의 설비에서 이 헬륨을 고순도로 정제해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게 공급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케이씨의 자회사 케이씨인더스트리가 일본 이와타니에서 헬륨을 수급해 삼성전자로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카타르에서 헬륨 원료 공급부터 차단되면서 반도체 업계에서도 비상이 걸린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는 중동 물량이 막히면 단기간에 대체 공급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카타르를 대체할 거래선으로 미국을 최우선으로 검토하고 있다. 품질이 검증돼 있고, 팹에 일부 공급되고 있기도 해 가격이 높아도 당장 쓸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러시아 지역에 있는 헬륨 업체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량·가격 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공급선을 뚫기 쉽지 않은 문제가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중동 지역의 해상 운송이 정상화되더라도 헬륨 공급망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헬륨 가격이 이미 몇 차례 급등을 겪은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러시아에서 신규 공급선을 확대해 수급 안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해령 기자 hr.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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