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은 퐁피두 명작들의 줄을 새로 세웠다, 색깔맞춤으로

입력 2026-03-26 22:39   수정 2026-03-27 09:06

파리의 퐁피두센터는 2025년부터 5년간 대규모 보수 공사로 휴관에 들어갔다. 그 흔적을 파리에서 찾지 못한 이들에게, 상하이 웨스트번드 뮤지엄은 하나의 대안이 되어주었다(관련 칼럼).

2019년 웨스트번드 그룹과 퐁피두센터가 손을 맞잡고 퐁피두의 컬렉션을 상하이로 가져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전시 협약이 아니었다. 소장품 부족과 학술적 기반의 부재라는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던 중국 현대미술관에 퐁피두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셈이었다. 그리고 이제, 퐁피두의 전시가 베이징 예술계에도 닿았다.



2026년 1월 23일부터 4월 15일까지 베이징 민생현대미술관(Beijing Minsheng Art Museum)에서 열리는 <색채의 정점! 프랑스 퐁피두센터 소장 미술 거장 특별전(COLORS: Masterpieces from the Centre Pompidou)>은 퐁피두센터 휴관 기간 중 기획된 순회전으로, 모나코를 거쳐 베이징에 상륙했다.

베이징 민생현대미술관·프랑스 퐁피두예술센터·모나코의 대규모 문화센터 '그리말디 포럼(Grimaldi Forum)'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퐁피두 소장 서양 미술 거장 55인과 중국 당대 작가 16인의 작품 총 100점이 출품되었다.



색채가 서사가 될 때

이번 전시는 기존 큐레이팅 방식인 연대순, 유파별로 공간을 구성하지 않았다. 프랑스 측 큐레이터 디디에 오탱제(Didier Ottinger)와 중국 측 독립 큐레이터 뤄이(?怡)는 '색채'를 전시를 풀어나가는 서사의 언어로 삼았다.

야수파·입체주의·초현실주의·추상주의·팝아트·미니멀리즘·개념미술로 이어지는 현대미술의 변화 궤적을, 연도도 유파도 아닌 빨강·하양·파랑·노랑·검정·초록·분홍의 7개 단색 공간과 혼합의 공간, 총 8개의 색채 차원으로 압축한 것이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와 이브 클랭의 블루가 나란히 걸리고, 앤디 워홀의 빨강과 베이컨의 빨강이 같은 벽을 공유한다. 같은 이름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온도의 색들이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것이다.





이 전시의 구성 방식은 단순히 색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같은 작가가 서로 다른 색채 공간에 흩어져 걸림으로써, 한 예술가의 세계를 시간의 흐름이 아닌 색채의 결로 읽어나가는 경험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피카소가 이 전시에서 단 하나의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랑 공간에는 《파란 옷을 입은 여인/Woman in Blue》(1944), 분홍 공간에는 《독서하는 여인(올가)/Woman Reading (Olga)》(1920)이 걸린다. 검정 공간에서는 《꽃다발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Bouquet》(1944)이, 초록 공간에서는 《데미존이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Demijohn》(1959)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네 개의 색채 세계를 넘나드는 피카소의 색채 스펙트럼이 곧 이 전시의 길잡이가 되는 셈이다.



동서양의 작품이 나란히 놓이는 전시의 첫 번째 공간은, 전시 전체의 성격인 ‘색채를 매개로 한 동서양의 대화’를 보여준다. 입구 오른편, 중국 현대미술의 4대 예술가 중 한 명인 웨민쥔(岳敏君)의 《무제》(1993)는 커다란 얼굴들이 다른 색의 사분면을 이루며 저마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맞은편에는 네덜란드 화가 테오 반 되스버그(Theo van Doesburg)의 작품이 자리한다. 몬드리안과 '데 스테일(De Stijl·풍격파)'을 공동으로 창시한 그는 일체의 구상적 요소를 거부하고, 순수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만으로 정신의 본질을 표현하고자 했다. 웨민쥔의 얼굴들이 감정을 과잉으로 드러낸다면, 되스버그의 화면은 감정을 철저히 지운다. 같은 다색의 공간에서, 두 작품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색채를 이야기한다.




오감으로 색을 느끼다

각 공간에는 프랑스계 칠레인 작곡가 로케 리바스(Roque Rivas)와 퐁피두센터에 위치한 음악표현과 과학기술 연구를 융합한 연구소 IRCAM이 협업한 사운드, 그리고 프라고나르 향수 회사와 함께 조성한 향기 설치물이 더해진다. 시각뿐만이 아니라 청각과 후각으로도 색채를 오롯이 감각할 수 있게 설계되었으며, 각 작품마다 조명의 각도와 밝기를 따로 조율했다. 색채의 감정을 완성하는 마지막 붓질, 그것이 이 전시에서 빛이 맡은 역할이다.



현대 미술가들에게 ‘파란색’은 피카소처럼 슬픔을 환기하고, 호안 미로처럼 열정과 몽상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다가온다. 전시실 안에서 르네 마그리트의 《여름 계단/Les Marches de l'ete)》(1938)은 잔잔한 해안과 짙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 몇 점이 흘러가는 풍경을 담고 있으나, 그 안에는 혼돈이 잠복해 있다. 마그리트의 파랑이 형이상학적 불안을 품은 차가운 파랑이라면, 중국 작가 쉬레이(徐累)의 파랑은 수묵화처럼 먹빛으로 번지며 내면으로 가라앉는 파랑이다.

《해상월/海上月》(2021)은 청색에서 먹빛으로 서서히 번지는 그라데이션을 보여준다. 중국의 전통 정원이 담장 너머의 달을 창문 틈으로 끌어들이듯, 쉬레이는 그 달을 화면 안으로 불러들인다.





초록은 자연·생명·성장·희망·평화·안전의 색으로 널리 인식된다. 그러나 같은 초록이라도 화가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세계가 열린다. 샤갈은 《초록 자화상》에서 이젤 앞에 앉아 작업하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적 평온하게 담아냈다.

반면 프랑스 신사실주의 화가 마르샬 레이스의 《대 오달리스크》는 앵그르의 《그랑 오달리스크》를 팝아트 방식으로 패러디한 작품으로, 상상 속 여성성에 대한 예찬을 전복하려는 의도를 품고 있다. 평온한 자기 응시와 날카로운 사회적 발언이 같은 초록 아래 나란히 놓인 것이다.





색채 하나로 120년의 현대미술사를 꿰어낸 이 전시는, 우리가 예술을 분류해온 방식 자체를 되묻는다. 피카소가 "색채는 감정의 변화를 따른다."라고 말한 것처럼, 어쩌면 색채야말로, 언어가 생기기 전부터 인간이 먼저 배운 감각의 문법이었을 지도 모른다.

퐁피두의 여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2026년 6월, 서울 여의도에 퐁피두센터한화서울이 문을 열 예정이다. 상하이 웨스트번드 뮤지엄에 이어 베이징의 전시, 그리고 서울까지?파리의 퐁피두가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문화의 축이 되어가고 있다.

아시아는 더 이상 서구 현대미술을 수동적으로 수입하는 대륙이 아니다. 각 도시는 퐁피두의 컬렉션을 각자의 문화적 맥락 안에서 소화하고 재해석하는 방식은, 현대미술의 지형도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배혜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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