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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만원 '내기 골프' 알고보니…음료에 약물 타고 스크린 조작

입력 2026-03-12 13:31   수정 2026-03-12 17:32

지난해 12월 골프 마니아인 A씨는 수도권의 한 스크린 골프 연습장을 찾았다. 매일같이 연습장을 찾을 정도로 골프를 즐기던 그는 그곳에서 자주 마주치던 B씨와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함께 내기 골프를 치게 됐다.

처음 내기는 타당 10만원 수준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게임이 이어지면서 판돈은 점점 커졌고, 아웃 홀 기준으로 100만원 이상이 걸리는 게임까지 등장했다. A씨는 초반에는 몇 차례 승리해 돈을 따기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샷이 흔들리며 컨디션 난조를 느끼기 시작했다. 결국 전체 게임에서는 번번이 패했다.

'원금이라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게임을 멈추지 못한 A씨는 하루에만 7시간 가까이 내기 골프를 이어갔다. 그렇게 열흘 동안 이어진 게임 끝에 A씨가 잃은 돈은 총 7400만원에 달했다. 하루에만 1000만원 가까운 돈을 잃은 날도 있었다.

평소 70타 안팎을 기록하던 점수가 80타를 넘기기 시작하고, 평소와 달리 무기력증 등 컨디션 난조를 느낀 A씨는 이를 수상히 여겨 영상을 촬영한 후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결과 B씨 일당은 A씨가 마시는 음료에 몰래 마약 성분이 포함된 약물을 타 집중력을 떨어뜨린 뒤, 타격 직전 원격 장치를 이용해 스크린 골프 화면 방향까지 조작해 승부를 속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사기 및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일당 9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범행을 주도한 2명을 구속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수도권 일대 스크린 골프장에서 피해자들과 내기 골프를 하며 총 10차례에 걸쳐 약 74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일당은 골프 동호회 모임이나 단골 스크린 골프장 등을 매일같이 방문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한 뒤, 재력이 있어 보이는 피해자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했다. 매일 스크린 골프장을 방문하는 피해자와 눈도장을 찍고, 취미를 매개로 자연스럽게 접근해 내기 골프를 제안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과정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과 전자 장비를 함께 이용했다. 일당은 불면증 등을 이유로 처방받은 향정신성의약품 로라제팜을 피해자 음료에 몰래 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피해자가 타격을 준비하는 순간 리모컨을 이용해 스크린 방향을 조작해 공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한 것으로 파악됐다.

공범들은 역할을 나눠 범행을 도왔다. 피해자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약물을 탄 음료를 바꿔치기하거나, 스크린 골프 컴퓨터에 USB 형태 수신기를 설치해 화면 방향을 원격으로 조정하는 방식이었다.

경찰은 피해자가 촬영한 현장 영상과 디지털 증거 등을 확보해 일부 피의자의 자백을 끌어내며 범행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동일한 수법으로 추가 범행이 있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죄와 추가 피해자를 확인하는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김유진 기자 magiclam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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