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중동전쟁 발발 이후 말 그대로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유가 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9일 서울 휘발유·경유 가격은 L당 각각 1949.53원, 1971.53원으로 2000원에 근접했다. 일주일 전인 지난 2일에 비해 휘발유는 181원, 경유는 290원 이상 올랐다.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가파르게 오르면서 화물차 기사, 자영업자, 농민 등 서민 생계를 옥죄고 있다. 서민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정책을 펴온 정부엔 큰 악재다.정부가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29년간 한 번도 시행하지 않은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카드를 꺼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물가안정”이라며 “석유 최고가격제 집행, 에너지 세제 조정, 소비자 직접 지원을 포함해 추가적 금융·재정 지원도 속도감 있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는 석유사업법 제23조에 근거해 가격 최고액을 지정·고시한다. 최고가격제는 도매가 혹은 소매가에 적용하는 두 가지 방안이 가능한데, 정부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넘기는 공급가에 상한을 설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정유사 마진을 제한하는 조치다.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의 2주간 변동률을 적용해 휘발유·등유·경유 제품의 최고 공급가격을 정하고 2주 단위로 가격을 게시한다. 기름값이 이란 전쟁 발발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면 최고가격 설정을 멈출 방침이다.
만약 최고가격이 국제 가격이나 생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정해진다면 제도의 현실성과 지속가능성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글로벌 가격 상승과 수급 불균형 구조 속에서 정유사가 손실을 피하기 위해 국내 공급을 줄이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애초의 정책 취지와 달리 국내 공급가 안정 효과가 줄어들고, 업계의 경쟁력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12일 최고가격제에 대해 “소비자 부담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면서도 “제도 도입 기간이 길어질수록 초과수요 발생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고가격제의 시행착오를 겪었던 해외 사례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헝가리 정부는 2021년 11월 에너지 공급 부족 사태에 대응해 휘발유와 경유 가격에 상한을 정하는 최고가격제를 실시했다. 시행 초기 석유제품 가격을 안정시키는데 성공했지만 정유사들의 수익성이 지속적으로 악화하면서 이듬해 12월 최고가격제를 철회했다.
최고가격제 대안으로 시행할 수 있는 정책 수단에는 유류세 인하가 있다. 현재 국내 휘발유 가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를 낮출 경우 즉각적인 가격인하 효과를 볼 수 있다. 정부는 2021년 11월부터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를 시행해왔다. 2022년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정부는 같은 해 최대 37%까지 인하폭을 확대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휘발유 7%, 경유 10%를 인하해주고 있다.
장기적으로 정부와 업계가 힘을 합쳐 추진해야 할 우선 정책은 원유 수입선 다변화다. 중동에 치우친 에너지 수입선을 분산시켜야 한다. 한국의 중동산 원유 의존도는 2016년 85.2%에 달했는데 해상 운송비 보조 등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2021년 59%대로 낮아졌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전 세계적인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나타나 현재 70% 안팎으로 다시 높아졌다. 위험 관리 차원은 물론 불안정한 중동 정세를 고려해서라도 장기 에너지 수급 플랜을 전략적으로 다시 짜야 할 때다.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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