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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대학 입시의 자유화

입력 2026-03-15 17:28   수정 2026-03-16 00:19

내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지문 출제를 시범적으로 인공지능(AI)에 맡겨본다고 한다. 영어 문제가 너무 어려워 수능을 망친 학생들은 작년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도 전에 학교 측 양해를 얻어 사설 입시 학원의 ‘재수 선행반’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2026학년도 수능 영어 문항이 국제적 추문이 될 만큼 문제적이었던 데서 나온 현상이다.

영국 BBC는 “한국의 고된 대학 입학 시험인 수능 영어 영역은 악명이 높다”고 소개하며 “일부 학생은 수능 영어 시험을 고대 문자 해독에 비유하고 또 다른 학생은 ‘미친 듯이 어렵다’고 표현한다”고 보도했다.

거론된 문항을 풀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가장 많은 항의를 받은 24번 문항은 관광 산업에 관한 글인데 ‘culture’와 ‘entertainment’를 저자가 합성한 ‘culturtainment’라는 개념이 주제였다. 고등학생이 치르는 시험에서 그런 개념을 주제로 삼았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글 내용도 빈약하고 현학적이었다.

외국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된 39번 문항은 컴퓨터 게임에 관한 글이다. ‘external reality’ ‘bodily space’ 같은 용어가 나와서 처음엔 형이상학 문제인 줄 알았다. 서너 번 읽으니 ‘혹시 게임 설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게임 설계 지침서’에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이들 문항은 너무 어려워서 문제가 됐지만 본질은 따로 있다. 수능 시험은 교육 과정의 한 부분이다. 학생이 배워야 할 진지한 주제를, 그중에서도 과학과 도덕률을 다뤄야 옳다. 특수한 직업에 종사할 때 배워도 될 주제를 출제한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청소년의 게임 중독이 문제가 된 터에 게임을 주제로 삼은 글을 출제한 것은 특히 문제적이다. 이런 사정은 문제의 근원이 출제자가 아니라 수능 시험을 주관하는 기관에 있음을 보여준다.

24번 문항은 지문 제목을 고르는 문제다. 39번 문항은 지문에서 한 단락을 뽑아놓고서 그것이 어느 곳에 들어가는 것이 옳은지 묻는다. 둘 다 본질적으로 작문 실력을 검증한다. 영어 해독도 벅찬데, 작문 실력까지 평가받으니 ‘미친 듯이 어렵다’는 절규가 당연하다. 영어 시험에선 문법을 제대로 배워서 글을 제대로 읽는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작문 실력은 국어 과목에서 측정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처럼 수능 시험 출제가 문제적이 된 근본 요인은 몇십만 명이나 되는 수험생을 한 줄로 세워 석차를 매긴다는 사정이다. 왜 그렇게 경쟁을 극대화하는가. 흙이 좋아 농학을 공부하려는 학생과 하늘이 신비해 천문학을 배우려는 학생이 왜 경쟁해야 하는가. 예술가가 되려는 학생과 기업가가 되려는 학생이 왜 서로 비교돼야 하는가.

당연히 자원도 많이 든다. 관장하는 기구가 따로 있어야 하고, 몇십만 명이 동시에 시험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물음이 나온다. 다른 방법은 없는가. 물론 있다. 대학에 맡기면 된다. 대학이 가르칠 학생을 스스로 뽑으면 이런 문제가 거의 다 사라진다. 예전에 대학이 스스로 학생을 뽑을 때는 입시가 지금처럼 문제적이지 않았다.

만일 대학이 고객인 학생을 스스로 뽑으면 학생이 입학 과정에서 경쟁하는 측면이 줄어들고 대학이 고등교육 시장에서 경쟁하는 측면이 커진다. 당연히 교육의 질이 높아지고 혁신이 이어진다. 이런 개혁이 시장경제를 운영하면서 번영해온 우리 사회의 구동 원리와 역사에 맞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교육부의 대학 통제는 해가 지날수록 강화돼 이미 대학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드물다. 한때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던 우리 대학이 초라하게 몰락한 원인이 거기 있다.

지금 교육부의 수능 담당 부서와 사교육 입시 학원은 실질적으로 복합체를 이뤘다. 비싼 사교육 입시 학원에 자식을 보낼 수 있는 부유층은 그런 복합체를 지지한다. 정치적 자산이 크지 않은 정권으로선 선뜻 개혁에 나서기 어렵다.

모든 개혁이 그러하듯 첫걸음은 깨달음이다. 국제적 추문이 된 수능 영어 시험은 시장경제 원리를 잊은 교육 제도가 어느 사이엔가 학생을 괴롭히는 괴물이 됐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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