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로 배럴당 100달러 안팎인 국제 유가는 과거 중동전 때와 비교해 안정적인 수준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물가 상승을 반영한 기준으로 보면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배럴당 179달러로 치솟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에도 유가는 130달러까지 급등한 바 있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증시 또한 과거와 같은 패닉 상태에 빠지진 않았다.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S&P500지수는 3% 이내에서 등락하고 있다.
WSJ는 이란전이 단기에 끝날 것이라는 낙관이 시장을 지탱하는 큰 힘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예상을 뒤엎고 전쟁이 장기화 수순에 접어들 때다.
전문가들은 전쟁 장기화에 대한 불안감이 시장을 완전히 지배하는 시점으로 이달 말을 꼽고 있다. 지난 11일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이 전략비축유 4억 배럴을 방출하기로 결정한 시점이다. 하루 2000만 배럴인 호르무즈해협의 원유 물동량을 감안하면 비축유 방출의 ‘약발’은 20일 뒤인 이달 30일께 다한다.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한 대응까지 힘을 잃으면 시장이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WSJ는 이 외에 대형 유조선 침몰, 민간 항공기 격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송유관 공격 등도 전쟁 장기화 우려에 불을 지필 돌발 변수로 꼽았다.
FT는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시장 폭락에 주목했다. 코로나19가 처음 퍼졌을 때 투자자들은 긴장이 곧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 알려지자 시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2020년 3월 시장이 급락하자 미국 중앙은행(Fed)은 15일 일요일 밤 긴급하게 금리를 0%로 인하했다. 하지만 그다음 날에도 미국 증시는 추가로 12% 폭락했다.
인공지능(AI) 거품 가능성과 사모대출 시장의 부실 우려가 공존하는 것도 리스크다. 전쟁이 길어지는 가운데 이들 리스크가 현실화하면 시장에 상당한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서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5달러가 임계치로 통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생활비 부담에 시달려온 유권자들이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는 인식을 굳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3.5달러를 넘어섰다. 2024년 5월 이후 최고 수준이다.
헤지펀드 운용사 맨그룹의 크리스티나 후퍼 수석시장전략가는 FT에 “전쟁에도 시장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현재 모습이 오히려 취약성을 강하게 가리킨다”고 지적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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