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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이런 상황 있었다" 리더를 망치는 아인슈텔룽 효과

입력 2026-03-17 17:24  



시장의 흐름이 급변하고, 기술의 패러다임이 전환되며 조직이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섰을 때 종종 리더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도 이런 상황은 겪어봤다."

언뜻 들으면 이 말은 일종의 안정감을 준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과거의 성공 경험은 흔들리지 않는 이정표가 되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더가 변화 앞에 안도하는 바로 그 순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적 탐색은 멈추게 된다. 심리학에서 이 현상을 아인슈텔룽 효과(Einstellung effect)라 부른다. 이는 단순히 리더가 무지하거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경험이 풍부하고, 유능하며, 과거에 성공을 구가해 온 리더일수록 더 깊게 발을 들이게 되는 역설적인 인지적 함정에 가깝다.

<i># 성공이 만든 가장 위험한 착각</i>
아인슈텔룽 효과는 1940년대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루친스(Abraham S. Luchins)의 연구를 통해 처음 체계화되었다. 그의 유명한 ‘물병 실험’은 이 효과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크기가 다른 세 개의 물병을 주고, 이를 활용해 정확히 100L를 측정하라는 과제를 준다. 초기 단계에서는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쳐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반복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단순한 계산만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후반부의 단순한 문제조차 이미 손에 익은 복잡한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참가자가 제시한 답변은 대부분 정답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아는 방식에 매몰되어 불필요하게 먼 길을 돌아가게 되었을 뿐이다.

이 메커니즘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영역일수록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체스 그랜드 마스터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이들은 익숙한 체크메이트 패턴에 집착하느라 훨씬 더 짧고 명확한 승부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뇌과학적으로도 이는 증명된 현상이다. 아인슈텔룽 상태에 빠지면 기존 패턴을 활성화하려는 경향이 새로운 대안을 탐색하려는 시도를 압도한다. 결국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닌, 그 정보를 해석하려는 생각이 틀이 이미 굳어버렸다는 점이다.

<i># 아인슈텔룽 효과는 어떻게 작동하는가?</i>
비즈니스 현장에서 아인슈텔룽 효과는 대개 잘못된 판단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지나치게 익숙한 판단’의 탈을 쓰고 등장한다.

1. 전략은 새로워졌으나, 관성은 그대로다
많은 조직이 전략 보고서에서는 변화와 혁신을 외치지만, 실제 의사결정의 순간에는 과거의 성공 공식을 답습한다. 환경이 바뀐 상황에서도 ‘비용 절감, 효율 최적화, 기존 고객 방어 등’ 한때는 정답이었던 방식들을 찾게 된다. 그 결과 서류상으로 전략은 존재하지만 비즈니스 현장에서의 진정한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2. 혁신을 외치며 실험은 거부한다
코닥, 제록스, 블록버스터의 사례는 단순한 실패담이 아니다. 이 기업들은 변화의 흐름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진 사업의 논리가 너무나도 강력했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한 것이다. 아인슈텔룽 효과는 혁신을 ‘미래의 기회’가 아닌 ‘위험한 일탈’로 보이게 만든다.

3. 구조적 결함을 개인 태도의 문제로 치부한다
새로운 세대가 조직을 떠날 때, 일부 리더는 이를 ‘요즘 인재들의 끈기 문제’로 해석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과거 고성장기에 최적화된 리더십 스타일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대가 변했음에도 과거와 동일한 동기부여 방식, 동일한 평가 기준, 동일한 관리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야말로 조직을 경직시키는 주범이다.

4. 위기 상황일수록 조직은 더 빠르게 굳어진다
디지털 전환이나 AI 도입처럼 불확실성이 큰 상황일수록, 리더는 본능적으로 검증된 사고방식에 더 강하게 의존한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안도감을 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조직의 적응 실패와 인재 이탈을 초래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인지적 고착에 취약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은 학습 속도와 혁신 성과 모두에서 현저히 낮은 결과를 보인다.

<i># 아인슈텔룽 효과를 극복하는 리더의 사고 장치</i>
아인슈텔룽 효과는 단순히 “열린 마음을 가지자”라는 식의 추상적인 결심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이러한 인지적 관성을 끊어 내기 위해서는 의사결정의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하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1. ‘해결책’이 아닌 ‘문제 정의’부터 의심하라
리더가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은 ‘어떤 답을 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이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상황을 과거에 겪었던 문제와 동일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의 시작점부터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2. 반대 의견을 개인의 용기가 아닌 조직의 구조로 설계하라
사고의 다양성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관점을 주입하는 역할을 설계해야 한다. 회의 시 특정 인원에게 ‘악마의 대변인’ 역할을 공식적으로 부여하여, 기존 논리에 균열을 내는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3. 학습보다 어려운 ‘탈학습(unlearning)’을 훈련하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거의 성공 방정식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연습이 중요하다. 비즈니스 시뮬레이션이나 실패 사례의 리버스 엔지니어링을 통해 기존 사고 방식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4. 데이터와 기술로 직관을 대체하지 말고 검증하라
데이터와 최신 기술의 역할은 리더의 직관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를 직관적으로 호출한 해법이 정말 현재의 시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를 검증하는 인지적 브레이크로 활용해야 한다.

<i># 리더십은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의심하는 능력</i>
아인슈텔룽 효과는 리더십의 ‘보이지 않는 적’이다. 익숙함은 우리에게 찰나의 안도를 선물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대안을 탐색하려는 사고의 회로를 정지시킨다.

리더십의 본질은 더 빠른 판단이나 더 많은 통찰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리더십의 본질은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판단 앞에서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 용기에 있다.

“이 해결책이 옳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정말로 지금 상황에 적용하기에 적합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단지 과거에 맞았던 선택이기 때문인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질 수 있을 때, 리더의 사고는 비로소 과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현재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리더십은 다시 한번 진화하기 시작한다.

유대영 휴넷리더십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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