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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리더의 시대는 끝났다”...협업을 막는 5가지 장벽[IGM경영전략]

입력 2026-03-22 05:45   수정 2026-03-22 05:48




최근 한 조직의 리더 200여 명과 함께 ‘협업’을 주제로 워크숍을 진행했다.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은 오랜 시간 강조돼 왔고 현재의 초불확실성(VUCA) 시대에서는 더욱 중요한 핵심 역량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사전적으로 협업은 ‘나누어 맡아서 일을 함’을 의미하지만 현대 경영에서의 협업은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경제 주체들이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생산 과정이나 연구개발 등에서 지적·물적 자원을 결합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역량이 결합해 ‘1+1=2’ 이상의 결과, 즉 집단 천재성을 만들어내는 조직적 행위를 뜻한다. ‘집단 천재성(Collective Genius)’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린다 힐 교수의 연구로서 개개인은 천재가 아닐지라도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함께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뛰어난 공동의 창의성이 발현될 수 있다는 개념이다.

힐 교수는 과거의 리더십이 앞장서 정답을 제시하는 솔로 천재였다면 혁신적인 조직의 리더는 집단 천재성이 발휘될 환경을 설계하는 건축가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집단 천재성은 인지 다양성(Cognitive Diversity)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인지 다양성은 지식, 경험, 관점, 해석, 분석 방식이 달라 문제 해결 및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차이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인지 다양성을 잘 활용해서 집단 천재성을 발휘한 협업 사례로 블레츨리 파크(Bletchley Park)를 소개해 보겠다.

◆인지 다양성이 만든 협업의 기적

블레츨리 파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하기 위해 영국 정보부가 운영했던 암호해독센터이다. 수학자 앨런 튜링뿐 아니라 체스 챔피언, 박물관 큐레이터, 고문서 학자, 해초 전문가 등 이질적인 전문가를 모아 놓고 이들의 인지 다양성을 극대화하여 난공불락의 암호를 해독했다.

그렇다면 이 성공이 그저 똑똑한 사람들을 다양하게 모아 놓았기 때문일까. 너무 다르고 개성 또한 지극히 강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는 극심한 혼란 상태가 당연히 있었을 것이다. 이제 리더가 필요해지는 시점이다. 리더들의 해법을 살펴보기 전 먼저 협업을 방해하는 장벽들을 살펴보자.

창의적 리더십센터(CCL)의 크리스 언스트와 도나 크로봇-메이슨은 협업을 방해하는 ‘5가지 경계(Boundaries)’를 정리했다.

첫째, 수직적 경계(Vertical Boundaries)는 조직 내 서열, 직급, 권한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장벽이다. 정보가 상하로 흐르지 못하고 리더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강화된다. 둘째, 수평적 경계(Horizontal Boundaries)는 서로 다른 기능(R&D, 마케팅, 생산 등)이나 전문 분야 간의 장벽이다. 각 부서가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사일로 효과를 초래한다. 셋째, 이해관계자 경계(Stakeholder Boundaries)는 조직과 외부 파트너, 고객, 규제 기관 간의 경계이다. 외부의 목소리나 시장의 트렌드를 읽지 못하게 된다. 넷째, 인구통계학적 경계(Demographic Boundaries)는 성별, 연령, 문화, 교육 배경 등의 차이에서 오는 장벽이다. 지식과 경험의 다름이 서로 존중받지 못하게 되며 인지 다양성이 활용되지 못하게 된다. 다섯째, 지리적 경계(Geographic Boundaries)는 물리적 위치, 시간대, 기술적 인프라의 차이로 인한 장벽이다. 다른 층에 근무하는 동료와 소통하는 양은 같은 층 동료 대비 1/10 수준이라는 연구도 있을 만큼 소통의 양과 질을 떨어뜨린다. 현실에서 이 5가지 장벽은 서로 실타래처럼 엉키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집단 천재성을 작동시킨 리더십

그럼 블레츨리 파크에서는 어떠한 장벽들이 있었고 리더들은 집단 천재성이 발휘될 수 있는 현업 환경을 어떻게 설계하였을까. 우선 문화적 충돌이 있었다. 이는 수평적, 인구통계학적 경계가 섞여 있는 형태다. 블레츨리 파크에는 엄격한 규율을 중시하는 직업 군인들과 넥타이도 제대로 매지 않고 산책이나 즐기던 천재 학자들이 섞여 있었다. 군 수뇌부는 학자들의 기이한 행동(에티켓 부족, 시간 엄수 미흡 등)을 군기 문란으로 보았다. 학자들은 군인들의 ‘경직된 보고 체계’가 연구의 창의성을 죽인다고 불평했다. 파크의 초대 책임자였던 알라스테어 데니스톤은 스스로를 ‘방패’로 자처하며 상부의 군사적 압박을 막아내고 학자들이 대학 연구실과 같은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음은 관료주의의 벽이다. 이는 수직적, 수평적 경계에서 발생한다. 전쟁 초기 블레츨리 파크는 인력과 자원 부족에 시달렸다. 암호 해독 기계인 ‘봄브(The Bombe)’를 제작하거나 타자수를 보충하는 등의 일이 계속 지연됐다. 공식적인 지휘 계통을 거치다 보니 현장의 긴급함이 상부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것이다.

암호는 매일 바뀌는데 지원은 몇 달씩 걸리는 상황이 계속됐다. 이에 앨런 튜링을 포함한 4명의 핵심 해독가들은 위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윈스턴 처칠 총리에게 직접 편지를 보낸다. 처칠은 이 편지를 읽자마자 ‘오늘 당장 조치할 것’이라는 붉은 딱지를 붙여 전폭적인 지원을 명령했다고 한다. 리더들이 ‘절차(Process)’보다 ‘목적(Mission)’이 우선임을 명확히 해 관료주의의 룰을 깨버린 것이다. 공동의 목적을 강조하는 것은 사일로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방법이다.

마지막은 정보가 막히는 이슈다. 이는 수평적 경계, 지리적 경계, 이해관계자 장벽의 복합체로 볼 수 있다. 파크는 각 오두막별로 임무를 철저히 분리했다. 예를 들어 6번 오두막은 공군 암호를, 8번 오두막은 해군 암호를 맡는 식이었다. 문제는 철저한 보안 원칙(Need-to-Know)으로 인해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자 한쪽에서 찾은 단서가 다른 쪽의 해독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절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에 데니스톤의 뒤를 이은 에드워드 트래비스는 ‘정보의 흐름’을 설계했다. 가장 먼저 각 오두막 사이에 ‘연락관’을 배치하고 정기적인 정보 교환 세션을 만들었다. 또한 암호 해독가들이 독일군과 전선의 상황을 더 많이 알수록 해독의 실마리를 더 빨리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보안이라는 명목하에 정보를 가두지 않고 공동의 승리를 위해 정보를 흐르게 만들었다.

파크에서 해독된 정보가 전선의 지휘관들에게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다시 현장의 피드백이 블레츨리로 돌아오는 피드백 루프를 완성한 것이었다. 역사학자들은 블레츨리 파크 덕분에 전쟁이 최소 2년 이상 빨리 끝났으며 그로 인해 유럽의 수천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협업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존중과 신뢰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조직과 협업하기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우리 조직에서 발생하는 협업 장벽을 냉철히 파악하고, 이 장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판을 설계하고 책임지고 구현해 내는 것도 리더들이 꼭 해야만 하는 일임을 잊지 말자.

임주영 IGM세계경영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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