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등 한국 대표 기업 7곳과 TSMC 등 해외 경쟁사 12곳의 사외이사 중 ‘기업인’(금융인 포함) 비중이다. TSMC, 애플 등 해외 경쟁사는 이사회의 기술 전문성을 높이고 글로벌 사업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같은 업종에 속한 기업의 전직 최고경영자(CEO)까지 사외이사로 영입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은 수십 년째 ‘교수·법조인·관료 중심’이란 틀을 못 깨고 있다. 한국 기업이 사외이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역량으로 아직 ‘빠른 의사결정’과 ‘규제·정책 대응’을 우선시하고 있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산업계에선 “교수·법조인·관료가 발휘할 수 있는 강점이 크지만, 기술 패권 경쟁 시대엔 한국 기업도 ‘기술통’ 중심으로 이사회 멤버를 다양화할 필요성이 높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국 회사의 경우엔 딴판이다. 미국 로봇·자율주행 업체 테슬라와 가전 업체 월풀, 석유화학업체 엑슨모빌,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은 사외이사 전원이 기업인 출신 기술 전문가다. AMD(87.5%)와 애플(85.7%), 엔비디아(77.8%), 셸(70%) 등도 기업인 사외이사 비중이 70%를 넘었다. 국적도 다양하다. 예컨대 TSMC는 사외이사 7명 중 1명만 대만인이다. 나머지 6명은 미국, 영국 국적으로 구성됐다.
2000년대 들어 한국 기업이 글로벌 톱티어로 성장하면서 일부 기업이 외국 국적의 명망가를 사외이사로 적극 영입한 사례가 있었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던 것으로 평가된다. 의사소통부터 이사회 참석을 위한 이동까지 시간이 지체되고 경영 판단이 느려지는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외국인을 사외이사로 둔 한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영어 네이티브인 사외이사를 위해 발표 자료를 2개 준비해야 하고, 의사소통도 2개 국어로 이뤄진다”며 “의사 결정 속도를 늦추는 요인”이라고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국의 관치와 노동·환경·사법 규제도 대관 전문가들이 사외이사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간판 기업 내부에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변화를 시도한 사례도 적지 않다. 예컨대 국내 굴지의 한 대기업은 4~5년 전 사내 이사 출신 이사회 의장을 중심으로 이사진을 글로벌 기업인 위주로 대폭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주요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가 커지며 이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대안으로 교수와 관료, 법조인 출신 중에서도 ‘기술 전문가’를 영입하는 움직임이 강화되고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반도체 석학으로 평가받는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정덕균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석좌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기술 관련 조언을 듣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의 전통적인 경영 방식을 감안할 때 사외이사진을 해외 기업처럼 온통 산업 전문가로 채우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다만 기술 전문가 비중을 높이고, 필요하다면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글로벌 기업 인사도 적극적으로 영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 패권 시대에 사내 이사만으로는 시시각각 변하는 기술 트렌드에 대응하고 유연하게 전략을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술 전문 경영인 영입을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도 부각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고도화하면서 각 분야에서 최고의 기업끼리 ‘동맹’을 맺고 함께 사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때 사외이사의 네트워크는 ‘가교’ 역할을 한다는 분석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삼성, SK, 현대차, LG 등 한국 간판 기업의 주특기가 달라지면 상호 간 사외이사 ‘수혈’이 필요해질 것”이라며 “예컨대 삼성전자 반도체 임원 출신이 현대차 사외이사로 들어가 반도체 전략에 관해 조언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황정수/김보형/김진원 기자 hjs@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