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순을 가장 날카롭게 분석한 철학자가 있다. 바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에게조차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하는 “어쩔 수 없었다”, “환경이 그랬다”, “내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말 속에는 자신의 선택과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교묘한 자기기만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유에 저주받은 존재”라고 규정했다. 우리는 국적, 계급, 시대, 신체 조건 같은 출생의 조건을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조건 속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심지어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겠다는 태도조차 하나의 선택이 된다. 인간은 결국 선택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존재다.

문제는 이 자유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자유는 해방감보다 먼저 책임과 불안을 동반한다. 내가 내린 선택은 단지 개인의 결정에 머물지 않는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선택이 “모든 인간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선언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내 삶의 방식은 곧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이 된다.
이러한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인간은 흔히 자기기만에 빠진다. 예를 들어 어떤 직장에서 부당한 관행이 지속되는데도 “조직이 원래 그런 곳이야”라며 침묵하는 경우가 있다. 혹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야”라고 말한다. 이런 말들은 현실의 제약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 가능성을 지워버리는 방식이기도 하다.
자기기만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태도다. 다시 말해 인간은 타인을 속이기 전에 먼저 자신을 속인다. 이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심화된다. 이런 현상은 인간을 점점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보여주기 위한 나’로 존재하게 만든다. SNS에서 우리는 실제의 삶보다 더 매끄럽고 성공적인 자아를 연출한다. 일상의 경험은 기록되고 편집되며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된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타인의 시선 속에서 객체가 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대신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해석하게 된다. 그 결과 삶은 선택의 과정이 아니라 평가의 대상이 된다. 무엇이 옳은가보다 무엇이 좋아 보이는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때 자기기만은 더욱 교묘해진다. 우리는 외부의 기대에 맞추어 행동하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조직의 문화, 사회적 관습, 경제적 압박 등 다양한 이유를 내세우며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러나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설명은 종종 책임을 외부로 이전하기 위한 언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진짜는 누구인가?
진정성이란 단순히 솔직하거나 감정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정성은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자유가 만들어내는 책임을 감당하는 태도다. 그것은 불편한 선택을 회피하지 않는 용기이며, 자신의 삶을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의 결단으로 구성하려는 노력이다.
진정성은 편안한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불안을 동반한다. 왜냐하면 진정성 있는 삶은 언제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 선택을 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나는 무엇에 책임을 질 것인가.” 이러한 질문은 우리를 끊임없이 흔든다. 그러나 바로 그 질문 속에서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삶의 창조자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과 정보의 폭발적인 증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AI, 알고리즘, 플랫폼은 우리의 선택을 더욱 빠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 준다. 하지만 동시에 그 선택의 의미를 흐리기도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지만,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는 점점 더 불분명해진다.
이러한 시대일수록 진정성은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진정성은 단순히 ‘나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인간이 되려고 하는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타인의 기대에 맞춰 만들어진 정체성이 아니라 선택과 행동 속에서 형성되는 실존적 태도다.
모두가 진짜를 말하는 시대일수록, 진짜는 말이 아니라 선택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람만이 비로소 ‘진짜’가 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정인호 GGL리더십그룹 대표/경영평론가(ijeong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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