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반도체 소재 기업 엠케이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패키징 공정에서 발생하는 납땜용 금속 입자인 폐솔더볼 재활용 공정과 폐열 회수 시스템 구축에 250억원을 투입했다. 이 중 150억원은 신용보증기금 보증을 통해 저리로 조달했다. 공정 개선으로 연간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 8% 줄일 수 있다는 점이 금융 지원으로 이어졌다.
한국도 흐름에 올라탔다. 정부는 2021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마련한 이후 녹색금융 공급 목표를 2024년 4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7조7000억원으로 늘린 데 이어 올해 8조6000억원까지 확대했다. 실제 공급액도 지난해 8조3000억원으로 목표를 웃돌았다. 기업들의 전기화·탈탄소 투자가 금융을 통해 빠르게 현실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재생에너지나 전기차처럼 기준이 명확한 분야는 자금 조달이 쉽다. GS E&R은 경북 영덕 풍력발전단지 건설을 위해 600억원 규모의 녹색채권을 발행했다. 회사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사업이라는 점에서 이차보전 혜택을 받았다”고 말했다. ‘녹색 여부’가 분명해 금융 접근성이 좋았다는 의미다.

문제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같은 소재 산업이다. 무탄소 전기를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이 산업들이 바뀌지 않으면 국가 전체의 에너지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들 산업의 탄소 감축의 절반가량을 수소와 탄소포집활용저장(CCUS)이 담당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기술들은 비용이 높고 상업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기업으로선 투자 부담이 크고, 금융권 입장에선 ‘그린워싱’ 리스크가 크다.
이 때문에 기존 녹색금융만으로는 산업 전환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녹색금융은 ‘이미 친환경’인 사업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전환 과정에 있는 산업은 지원 사각지대에 놓이기 쉽다는 의미다. 기후정책이니셔티브(CPI)에 따르면 전체 녹색금융 중 소재 부문에 투입된 비중은 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엠케이전자의 재활용 시스템 투자 역시 공정 개선 효과를 엄격히 입증한 뒤에야 지원 대상에 올랐으나, 앞으로는 정부의 전환금융 확대에 따라 자금 조달의 문턱이 대폭 낮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우선 녹색분류체계에 해당하기만 하면 까다로운 인증 기준 등은 5년 뒤에 따지는 선(先)지원 방식의 유럽연합(EU)형 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당장 기준을 맞추기 힘든 소재 산업을 위해, 기업이 내놓은 탄소감축 로드맵의 타당성만으로도 자금을 공급하는 일본식 모델을 병행한다.
독일은 2021년 9억유로를 들여 민관 합작기관 ‘H2글로벌’을 설립하고, 청정수소 수입을 전담하는 자회사 힌트코를 통해 구매 가격과 판매 가격의 차이를 보전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손실 위험이 줄어들자 은행과 투자자들이 생산 설비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나섰고, 2024년 한 암모니아 기업이 3억9700만유로 규모의 장기 수소 공급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엔 25억유로 규모의 추가 사업 입찰에 나서며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오 교수는 “정부 자금을 마중물로 민간 투자를 끌어내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한국도 수소 운송이나 탄소 저장소 확보 같은 전략 분야에 전환금융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발 더 나아갔다. 2021년 전환금융 기본지침을 마련한 데 이어 2024년 2월 세계 최초로 ‘전환국채’를 발행했다. 5년물과 10년물 각각 8000억엔 규모로 발행된 국채에 약 5조엔의 자금이 몰렸다. 일본 정부는 이 자금을 소재 산업의 공정 전환에 투입할 계획이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