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여의도 증권가에서 ‘박스피’라는 말이 유행했다. ‘박스권’과 ‘코스피’를 합친 이 말은 한국 증시가 장기간 가두리 양식장처럼 정체된 현상을 일컫는 조롱 섞인 별칭이었다. 지난해 시장에 발을 들인 투자자들에게 이 단어는 고어(古語)처럼 낯설 것이다. 지난해 초 240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지수가 불과 1년여 만에 6000까지 돌파하는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한국 증시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고수익 시장으로 각인됐을 법하다.BoA 보고서가 나온 이튿날 국내에서 박스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모 증권사 임원을 만났다. 그는 과거 투자전략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베스트 애널리스트이자, 2020년 초 코로나19 공포로 증시가 폭락할 때 가장 먼저 ‘V자 반등’을 주창한 인물이다. 4년여 만에 마주한 그에게 “지금의 한국 증시를 어떻게 평가하냐”고 물었다.
그는 지수가 조정받더라도 1년 전의 2000대 중반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단언했다. 이유는 명쾌했다. 우선 기업들의 이익 체력이 질적으로 달라졌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영업이익은 약 291조원으로 추정되는데, 올해는 6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600조원의 절반 이상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에서 나오긴 하지만, 두 회사를 제외해도 영업이익은 32%가량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기업의 이익 규모가 두 배로 늘면 주가도 그에 걸맞게 상승하는 것이 순리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유동성이다. 지난해까지 하루 평균 20조원 안팎이던 유가증권시장의 거래대금은 이달 들어 40조원(상장지수펀드 제외)으로 급증했다. 증시 대기 자금인 고객예탁금은 120조원으로 1년 만에 두 배가 됐다. 개인투자자의 증시 참여가 확대된 결과다. 물론 중동 전쟁 장기화나 사모대출 시장 부실 등 외부 암초가 증시의 변동성을 키울 수는 있다. 하지만 한국 증시가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뉴노멀에 진입했다는 점은 숫자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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