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스피커에서 부드러운 안내음이 나온다.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새벽에는 깊은 수면이 평소보다 30분 정도 부족했어요. 아침에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추천해 드릴게요.”

남편이 혈압계를 팔에 차고 측정하면, 기기는 자동으로 데이터를 허브에 전송한다. 혈압·심박·체온·체중은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재도록 안내되고, 수치가 평소 범위를 벗어나면 화면에 ‘주의’ 표시와 함께 내과 진료 예약을 제안한다. 일정 수준 이상 위험하면, 단지 내 클리닉 또는 제휴 병원에 알림이 가도록 설정돼 있다.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면, 냉장고와 연동된 시스템이 전날 식단과 오늘의 약 복용 정보를 함께 띄운다. “어제 나트륨 섭취가 많았습니다. 오늘은 국 간을 조금 싱겁게 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전 10시, 부인은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리는 요가 프로그램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현관 센서가 문이 열리고 닫힌 시각, 나간 사람의 수, 나간 뒤 집 안 움직임이 사라진 것을 인식한다.

남편은 집에 남아 TV를 보다가 소파에서 가볍게 졸기 시작한다. 시스템이 이 시간을 ‘휴식 패턴’으로 알고 있지만, 만약 평소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고, 심박·호흡 패턴에도 이상이 느껴진다면 ‘지속 비활동’으로 판단한다.
거실 스피커가 먼저 조심스럽게 호출한다. “선생님, 괜찮으신가요? 2시간 동안 움직임이 거의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로 응답해 주세요.” 응답이 없으면 스마트폰 앱으로 1차 알림을 주고,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운영센터의 케어 매니저에게 경보가 전달된다. 필요하다면 직원이 집으로 직접 방문하거나, 보호자에게 즉시 전화를 건다.
다른 곳에 사는 아들이 점심시간에 앱을 열어보며, 아침부터 지금까지의 간단한 리포트를 확인한다. “야간 수면 양호, 혈압 약간 높음(모니터링 중), 오전 활동량 정상, 특별 이상 징후 없음” 같은 요약이 보기 쉽게 정리돼 있습니다. 아들은 “오늘 저녁 전화 한 통 해 드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안심한다.

인공지능과 주거 기술이 결합해 우리 일상을 바꿀 미래의 모습이다. 아직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건설사는 단순히 아파트를 짓는 데 그치지 않고, 고령자를 위한 주거·돌봄·의료·웰니스 서비스를 통합한 플랫폼 사업자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최근 건강기능식품·헬스케어 기업 해밀리와 손잡고 경기 의왕에 들어서는 메디컬 레지던스에 ‘AI 시니어 리빙 솔루션’을 구축하기로 했다. 이 솔루션은 초개인화 웰니스 코칭, 24시간 안전관리 등의 서비스를 통해 고령자가 독립적이고 능동적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시니어 레지던스 운영자에게는 거주자 실시간 대시보드, AI 챗봇 매니저 등의 서비스가 제공돼 업무 효율을 높인다.
의왕 메디컬 레지던스는 의왕 최초의 종합병원(250병상), 약 570가구 규모의 시니어 레지던스, 오피스텔, 상업시설 등이 결합한 복합단지로 조성된다. 사랑의병원장이자 통합의학 권위자인 황성주 박사가 구상한 ‘미래융합의학 기반 스마트 메디컬 레지던스’ 비전을 반영한다. 삼성물산은 이 단지를 시작으로 AI·데이터 기반 시니어 리빙 모델을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건설도 시니어 주거·헬스케어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서울 은평, 경기 용인 등에서 시니어 레지던스 조성을 추진 중이다. 신한금융그룹 계열의 시니어 전문 운영사와 손잡고 노인복지주택·실버타운·데이케어센터 등 다양한 노인주거복지 모델도 공동 개발 중이다. 건설사가 물리적 공간을 제공하고, 금융·보험·요양·문화 서비스는 전문 운영사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결합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분당서울대병원과 ‘주거 기반 AI 헬스케어 플랫폼’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현대건설이 개발한 헬스케어 플랫폼을 의료 전문 기관과 연계해 미래형 건강 주거 서비스로 구체화하려는 목적이다. 현대건설은 주거 공간 내 실증 환경을 제공하고, 헬스케어 플랫폼 기술 개발을 담당한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의료와 임상 관점의 자문과 의학적 적정성 검토를 맡는다.
포스코이앤씨도 최근 단지 내 AI 헬스케어 서비스를 위해 헬스케어 전문기업 아크(ARK)와 손잡았다. 앞으로 ‘더샵’ 단지 내 전용 라운지에서 혈압, 심박수, 스트레스 지수, 혈중 산소 포화도 등 주요 건강 지표 확인은 물론 분기별 정밀 건강 검사와 연령대별 맞춤형 검사까지 받을 수 있다. AI가 개인별 건강 상태를 분석하고 평가해 유지 혹은 개선이 필요한 생활 습관에 대한 방향도 제시해준다.
롯데건설은 시니어 복지주택 직접 운영에 나섰다. 서울 마곡의 ‘VL 르웨스트’, 부산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 ‘VL 라우어’ 등은 호텔식 서비스에 의료·헬스케어,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결합한 고급형 민간 시니어 레지던스다. 건설사가 개발부터 운영·서비스까지 수행하는 구조가 특징이다. 다른 건설사도 의료기관·글로벌 운영사와의 제휴를 통해 시니어 레지던스와 메디컬 복합단지를 확대하고 있다.
건설사가 시니어 헬스케어에 공을 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구조 변화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를 넘어서면서, 자산은 있지만 건강·돌봄·외로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싶어 하는 고령층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를 중심으로 ‘집 한 채를 팔아서라도, 의료와 서비스가 결합한 고급 시니어 레지던스에 살겠다’는 수요가 뚜렷해지면서,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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