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을 오늘 팔았는데, 돈은 왜 모레 주냐'는 얘기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8일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를 위한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필요하면 조정을 하는 의제 중 하나로 검토해보라"는 이 대통령의 제안에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국제적 동향을 잘 파악해 절대 늦지 않고, 오히려 선제적으로 청산·결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답했다.
이들이 말한 건 '주식 결제주기'다. 현재 한국거래소 시스템은 주식을 팔면 계좌에 현금이 들어오는 데까지 2영업일이 걸리는 'T+2' 방식이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이를 'T+1'으로 앞당기겠다는 한국거래소의 계획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궁금증이 생긴다. 홍콩 등 아시아 선진 시장에서도 여전히 결제주기를 'T+2'로 유지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단축을 추진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에 'T+2' 시스템을 도입한 건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코스피가 생기기 전부터 약 50년간 주식 매매 체결 이후 2영업일 뒤에 실제 결제로 이어지는 방식을 취해왔다.
이 구조를 전략적으로 사용한 게 '미수거래'다. 미수거래는 전체 주식매입대금의 일부인 증거금만 먼저 납부하고, 나머지는 외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다. 증권사에서 '증거금 30~40% 계좌'를 만들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예컨대 수중에 400만원만 있어도 주식 1000만원어치를 미리 살 수 있고, 이틀간 주가가 10% 오르면 나머지 대금을 갚으면 된다. 400만원으로 100만원을 벌었으니(25%), 1000만원을 모두 내고 같은 돈을 버는 것(10%)보다 수익률이 높다.
그 대신 주가가 하락하면 손실률도 그만큼 극대화된다. 심지어는 투자자가 빌린 돈을 못 갚는 경우도 생긴다. 이 때문에 증권사는 미수거래 시 결제불이행 위험을 낮추기 위해 한국거래소 등에 일종의 보증금(증거금)을 쌓아둬야 한다.

주가 변동성이 커질수록 미수거래의 위험성은 커진다. 2021년 초 미국 '게임스탑 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을 중심으로 개인투자자들이 게임스탑 주식을 대량 매수해 주가가 폭등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거래대금이 급증하자 미국 증권정산소(NSCC)는 증권사 로빈후드에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증거금을 요구했다. 조(兆)단위 증거금을 낼 돈이 없었던 로빈후드는 결국 호가창에서 '매수 버튼'을 없애는 극단적 선택에 나섰다. 개미들의 '패닉 셀링'에 나섰고 주가는 수직 낙하했다.
미국이 2024년 결제 시스템을 기존 'T+2'에서 'T+1'일로 하루 단축하게 된 배경 중의 하나다. 거래 체결과 실제 결제 사이의 시차를 하루 줄여, 그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변동성과 리스크를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국내에선 비슷하게 2023년 영풍제지 사태가 있었다. 당시 영풍제지는 약 1년 만에 주가가 14배나 폭등하면서 개미들의 미수거래가 급증했다. 하지만 주가 조작 세력의 계좌가 묶이면서 주가가 하한가를 찍자 대규모 반대매매(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증권사가 주식을 강제 처분하는 것)가 발생했다. 당시 키움증권 한 곳에서만 4000억원이 넘는 미수금 손실이 발생했다.
최근에도 중동 전쟁의 여파로 국내 증시 변동성이 커지자 반대매매가 증가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코스피 랠리에 올라타기 위해 'T+2' 시스템을 활용한 '빚투'를 하다가, 증시가 급락하자 돈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져서다. 전쟁이 터진 직후인 지난 6일 하루에만 824억원에 달하는 반대매매가 발생했다.

정부는 결제일을 단축하면 이같은 미수거래 리스크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T+1 추진은 주가 변동성과 거래량 증가에 대응해 결제 리스크를 감소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장에선 마냥 달가워하지만은 않는 분위기다. 가장 큰 우려점은 '외국인 투자 위축'이다. 현재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해외 운용사와 글로벌 브로커, 국내 상임대리인 등 몇 단계를 거쳐 예탁결제원에서 대금을 결제하는 복잡한 구조가 대부분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고객 입장에서는 결제일이 빨라지다보니 편리해질 것"이라면서도 "외국인 투자자는 환전 및 자금 이체 등 처리 단계가 많기 때문에 하루 안에 끝내기 쉽지 않고, 시스템 정비와 인력 충원에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며 "T+1 시스템은 당장 도입하기보다는 최소 2~3년은 찬찬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고 했다.
이선아/오현아 기자 suna@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