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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내세워 투자 유치한 기업, 웃돈 붙여 돌려줘야 할 판

입력 2026-03-19 17:13   수정 2026-03-20 00:48

마켓인사이트 3월 19일 오후 3시 6분

대기업들이 상장 준비 단계에서 확보한 외부 투자금이 재무구조에 부담을 주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정부가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방침을 확정한 여파다. 국가 전략 산업군으로 여겨지는 업종에 속해 ‘바늘구멍’ 같은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일부를 제외한 기업 대다수는 기존 투자금부터 갚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상장 약속했는데 어쩌나”

19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너지와 SK플라즈마, LS에식스솔루션 등 다수의 대기업 계열사가 자금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대기업 계열사 IPO는 외부의 힘을 빌려 사업을 키울 수 있는 자금조달 수단이었다. 하지만 상장 기업이 지배력을 끼치는 모든 계열사가 중복상장 심사 대상에 포함되면서 이런 자금 순환 구조가 사실상 마비됐다.

이미 상장을 전제로 투자금을 유치한 기업은 고충이 더 크다. 기한 내에 상장하지 못했을 때 재무적 투자자(FI)가 확보한 지분을 웃돈을 주고 되사야 하는 풋옵션이나, 경영권 지분을 강제 매각할 수 있는 드래그얼롱(동반매각청구권) 조항 때문이다.

상장이 무산되면 재무적 손실을 감내해야 하고, 경영권도 흔들리게 된다는 뜻이다. FI를 설득해 계속 지분을 보유하게 한다고 해도 상당액의 배당금 지출이 불가피하다.

한화에너지는 지난해 말 오너일가가 보유한 1조1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일정 기간 내에 상장하겠다는 약정을 맺었으나, 향후 행보가 불투명해졌다. 한화에너지는 ㈜한화의 최대 주주로 지분 22.2%를 보유 중이다. 모회사가 신규 상장하는 예외적인 사례지만, 정부가 규제 범위를 넓히면서 영향권에 들게 됐다.

내년 초까지 상장을 약속한 SK플라즈마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SK디스커버리가 지분 53.79%를 보유한 자회사인 만큼 강화된 중복상장 심사를 통과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상장이 불발되면 투자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약 2000억원을 갚아야 한다.

앞서 중복 상장 논란을 겪은 롯데·SK그룹은 교환사채(EB)와 주가수익스왑(PSR) 등으로 신규 자금을 조달해 FI에 기존 투자금을 되돌려줬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온 투자자에게 약 3조6000억원, SK엔무브 투자자에게 8600억원을 지급했다. 롯데지주는 롯데글로벌로지스 투자자에게 약 3000억원을 주고 주주 간 계약을 해소했다.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해외 상장을 대안으로 고려하던 기업들도 난감한 모양새다. 해외 거래소 상장 때도 ‘이사회의 주주 충실의무’를 적용하기로 해서다. 이사회가 자회사 상장에 따른 주주 손실 등에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 있게 해외 상장에 나설 수 있는 기업이 있겠느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정부가 제시한 예외 조항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특히 로봇과 인공지능(AI), 2차전지 등 국가 차원에서 육성 의지가 강한 산업군에 속한 HD현대로보틱스 등은 오히려 이번 기회에 상장 작업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주 동의와 이사회 승인이라는 까다로운 절차가 남았지만, 최소한의 심사 기회는 열려 있다는 얘기다.

예외 업종에 속하지 못한 대다수 대기업 계열사는 기업 이미지 변신이나 인위적인 사업 구조 재편 없이는 당분간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IPO 외에 이렇다 할 투자금 회수 통로가 마땅치 않아서다. IB업계 관계자는 “무분별한 계열사 상장에 제동이 걸리면서 대기업들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자본시장의 입맛에 맞게 ‘성형’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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