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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식품 원료 시장에 담합이 반복되는 까닭

입력 2026-03-19 17:29   수정 2026-03-20 00:05

밀가루에 이어 설탕, 전분당에 이르기까지 식품 원료 시장에서 담합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7개 제분사의 밀가루 가격 담합 사건을 심의하고 있고, 3개 제당사에는 설탕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과징금 4083억원을 부과했다. 4개 전분당 제조사에 대해서도 전분당 가격 담합 혐의를 담은 심사보고서를 발송하고 심의 절차를 개시했다. 더 나아가 검찰은 담합 관련 임원들을 기소하고 공정위에 고발을 요청했다.

이들이 실제로 담합했는지는 최종심 판단을 지켜봐야 하지만, 식품 원료 시장에는 공통으로 담합에 취약한 환경이 조성돼 있다.

우선 식품 원료 제조사는 원재료를 거의 전량 수입한 후 이를 가공해 완제품을 생산하는데, 원재료 수입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지만 완제품 수입은 기술적, 제도적 측면에서 제한이 많다. 밀가루의 원재료인 밀은 원곡이 아닌 가루 상태에서 산패가 빨라지고 수분을 잘 흡수하는 등 품질 관리가 쉽지 않다. 설탕의 원재료인 원당에 비해 설탕 역시 보관이 어렵다. 또한 정부는 국내 제당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원당에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반면, 설탕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해 국내 생산을 유도해 왔다. 전분당도 마찬가지로 원재료인 옥수수 알갱이는 운송과 보관이 쉽고, 옥수수에는 낮은 관세, 전분당에는 높은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다음으로 밀가루, 설탕, 전분당 같은 식품 원료는 원재료를 단순 가공해서 만들기 때문에 제품 간 차별이 거의 없고, 대규모 시설이 필요한 장치산업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이에 따라 웬만한 국내 기업이 시장에 신규 진입하기 힘들고, 수입에 대한 기술적·제도적 제한으로 외국 기업도 들어오기 어려워 식품 원료 시장은 서너 개의 국내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설탕 시장 상위 3사 합산 점유율은 90%로 시장 지배적 사업자 요건을 갖추고 있다. 밀가루 시장과 전분당 시장의 상위 4사 합산 점유율도 85%를 넘는다.

담합은 참여 사업자 간 가격에 대한 합의가 핵심이다. 식품 원료 기업이 소수이고 모두 국내 기업이라는 점은 합의가 쉬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업자 간 원재료나 생산 공정이 달라 원가가 다르고 제품이 차별적이라면 각자의 원가나 수요 요인으로 가격에 대한 합의가 어렵지만, 식품 원료 기업은 같은 원재료를 수입해서 가공하고 제품에도 차별성이 거의 없으므로 가격을 합의하고 이를 유지하기 쉽다. 담합은 상품 가격을 올려 참여 사업자에게 이득이 되지만 올라간 가격은 새로운 경쟁 사업자의 시장 진입을 불러 담합이 와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식품 원료 시장에서는 규모의 경제와 수입 제한으로 신규 기업의 진입이 어렵다.

이처럼 식품 원료 시장이 담합에 취약한 구조라는 점은 이 시장에서 담합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밀가루와 설탕 업계는 2000년대 초반에도 담합이 적발돼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정부는 최근 불거진 반복적인 담합에 강력 대응하는 차원에서 과징금을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위반 행위의 중대성에 따라 담합 관련 매출액의 0.5%에서 20%까지 부과했으나, 과징금 하한을 매출액의 10%로 상향할 예정이다. 과징금 상한도 올리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같은 징벌적 과징금이 담합 예방에 효과적일 수 있지만, 법률 위반으로서 담합이 참여자 간 명시적인 합의를 전제로 하므로 암묵적인 담합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담합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시장을 보다 경쟁적인 구조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원재료에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으면서도 가공 완제품에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식품 원료 시장에서 소수 국내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게 하는 제도는 개선해야 한다. 식품 원료 시장은 더 이상 국내 기업 보호의 대상일 이유가 없다. 수입을 확대해 경쟁을 활성화하면 담합은 애초에 뿌리내리기 어렵다. 더군다나 수입이 확대돼 식품 원료 가격이 인하되면 가공식품 등 물가 하락 여지도 커 소비자 후생까지 증진할 수 있다. 담합이 사후적으로 손해가 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담합을 하기 어려운 사전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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