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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이 영월에서 쓴 눈물의 ‘자규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입력 2026-03-20 02:31  

자규시(子規詩)
단종

한 마리 원통한 새 궁중을 떠나온 뒤
외로운 홑 그림자 푸른 산중 헤매누나.
밤마다 잠을 청해도 잠은 이룰 수 없고
해마다 한을 풀려 해도 한은 끝이 없네.
울음소리 끊긴 새벽 봉우리 달빛만 희고
피 뿌린 듯 봄 골짜기에 붉은 꽃이 지네.
하늘은 귀먹어서 슬픈 하소연 못 듣는데
어찌하여 설움 많은 내 귀만 홀로 밝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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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조선 왕 단종(1441~1457)이 강원도 영월 유배지에서 지은 ‘자규시(子規詩)’입니다. 피를 토하듯 운다는 자규, 곧 두견새에 자신을 빗대어 읊은 절창이지요. 짧은 시지만 그 속에 어린 임금의 한이 혈흔처럼 응축돼 있습니다.

단종의 삶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현덕왕후를 여의었고, 열한 살에 아버지 문종이 승하하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지요.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자 단종은 허울뿐인 상왕으로 밀려났습니다.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 이후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돼 영월 청령포로 유배됐습니다. 청령포는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은 산에 막혀 있는 ‘육지 속의 섬’이지요.

청령포에 머문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자 단종은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관풍헌 앞에 누각이 있었는데, 단종은 그곳에 올라 먼 데를 바라보곤 했지요.

이 누각에서 지은 시 중 한 편이 ‘자규시’입니다. 원래 매죽루(梅竹樓)라고 불리던 이 누각은 단종이 여기에서 자규의 한을 담은 시를 읊은 뒤부터 자규루(子規樓)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 시에서 단종은 자신을 ‘한 마리 원통한 새’라고 부릅니다. 이 비유 하나에 시 전체의 정서가 응축돼 있지요. 이 시의 참모습은 슬픔을 직접 토로하지 않고 자연의 이미지에 스며들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새벽 봉우리에 걸린 달빛은 하얗고 차가운 빛입니다. 밤새 울던 자규의 울음이 끊긴 뒤에 남은 적막, 그 위에 떠 있는 창백한 달빛이 단종의 심정을 그대로 비춥니다. 봄 골짜기의 붉은 꽃도 생명의 환희가 아니라 피를 뿌린 것처럼 아파 보입니다.

마지막 구절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후벼 팝니다. ‘하늘은 귀먹어서 슬픈 하소연 못 듣는데/ 어찌하여 설움 많은 내 귀만 홀로 밝은고.’ 남들은 지나쳐 듣는 소리도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놓치지 못합니다. 두견의 울음은 새의 소리가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메아리치는 통곡일 것입니다.

조선 왕조 500년의 시 가운데 이처럼 어린 왕의 슬픔이 선연하게 맺힌 작품은 드뭅니다. 단종은 이 누각에서 또 다른 작품 ‘자규사(子規詞)’도 남겼습니다.

달 밝은 밤 두견새 슬피 우는데
시름 못 잊어 누각에 기대었네.
네 슬피 울어 듣는 나도 괴롭구나.
네 울지 않으면 내 시름도 없을걸.
이 세상 괴로운 사람에게 말하노니
부디 춘삼월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소.

이 작품은 ‘자규시’보다 더 직접적입니다. ‘자규시’가 비유와 이미지로 한을 눌러 담은 데 비해 ‘자규사’는 누각의 난간에 몸을 기대고 실제로 내뱉는 탄식처럼 들립니다. 마지막의 ‘부디 춘삼월엔 자규루에 오르지 마소’가 백미이지요.

이 말은 남을 향한 것이면서 자기를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올라서 멀리 바라보면 더 그리워지고, 귀를 기울이면 더 서러워지니 차라리 오르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지요.

단종이 이처럼 시로 울적함을 달래며 유배의 세월을 견디는 동안 산 너머 경상도 순흥에 유배돼 있던 여섯째 숙부 금성대군이 단종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발각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뒤로 또 한 번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이어졌지요. 세조는 결국 단종을 죽이기로 하고 금부도사 왕방연에게 사형 집행을 명했습니다.

왕방연이 사약을 들고 관풍헌에 이르렀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단종을 시중들던 노비가 활줄로 목을 졸라 생을 마감하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열일곱 살 너무도 어린 나이. 왕위에서 밀려난 것만으로도 모자라 마지막 죽음마저 그렇게 비밀스럽고 처연합니다.

사형을 집행하러 갔던 왕방연은 돌아오는 길에 참담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고 시조 한 수를 남겼습니다. 바로 ‘단장가’입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나라의 명을 받들어 가긴 했으나 어린 임금의 죽음을 견디기 어려웠겠지요. 물이 우는 것인지 내가 우는 것인지 모를 밤길, 냇물 소리마저 단장의 곡성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단종의 비극은 한 사람의 비극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뒤 우리에게까지 번져 오는 비극이지요.

영월의 산과 강은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청령포의 물길도, 관풍헌의 마루도, 자규루에 스미던 봄밤의 달빛도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달라진 것은 풍경이 아니라 그 풍경 위에 겹쳐 보이는 인간의 눈물이지요.

단종은 떠났으나 그의 시는 남았습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오늘 시를 통해 그를 다시 만나며, 두견새 울음이 번져 가는 영월의 봄밤 한 자락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오래된 길이 돌아서서 나를 바라볼 때』 등 출간. 김달진문학상,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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