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월 26일과 27일 '사법개혁'이라는 명분 하에 두 개의 법률이 이틀 연속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고, 두 법 모두 3월 12일 공포되었다. 형사사건에 관여된 법관, 검사 또는 범죄수사를 하는 자의 일정한 행위를 처벌하는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의 신설과 법원에서 확정된 재판을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대상으로 삼는 재판소원제(헌법재판소법 개정)가 그것으로, 이러한 변화는 수십년간 이어오던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만큼 중대한 일로 평가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왜곡죄를 '정치검찰의 조작기소를 뿌리 뽑는 법'이라고 선언하고, 재판소원제로 인하여 법원의 재판이라는 공권력의 행사로부터 국민의 기본권 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두 법률이 실제로 법 현장에 미치게 될 영향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과연 이러한 개혁법안이 가져올 것이 위와 같이 포장된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재판소원제는 법원의 재판이 헌재 결정에 반하는 경우, 적법한 절차를 위반한 경우,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대법원 확정 판결에 대해서도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누군가는 과거의 특정 사례를 들어 성역화된 법원 하의 정치 판사들을 통제하는 불가피한 제도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왜 하필 헌재가 그 통제 기관이어야 하는가? 헌재는 9인의 재판관 중 6인이 대통령과 국회라는 정치인의 지명을 받는 그 어느 기관보다도 정치적인 기관이다. 역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치적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절대적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을 가진 현 시점에서 구성되는 헌재가 과연 가치중립적인 판단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특히 재판관의 성향이 어느 영역보다도 판단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온 노동법의 영역에서 헌재가 치우침 없는 판단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는 의구심을 감추기 어렵다.
또한 재판소원제는 ‘사실상 4심제’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재판소원제를 옹호하는 측은 재판소원이 도입되어도 헌재는 법률·사실 심사가 아니라 기본권 심사만 하므로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판에서 패배한 당사자는 거의 모든 경우에 해당 재판으로 인하여 자신의 기본권 ? 재산권, 행복추구권, 평등권, 노동3권 까지도 ? 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 청구의 요건을 갖추는 것이 가능하다. 결국 재판소원의 세 번째 요건인 '기본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는 사실상 재판소원의 범위를 무한히 확장 가능한 기준인 것이다. 이에 대하여 헌재는 사전심사로 재판소원의 남용을 걸러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러한 사전심사 자체가 또 하나의 심급처럼 기능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로써 재판소원제는 기업 경영에 있어 법적 불확실성의 증폭이라는 중대한 리스크를 더하게 되었다. 그동안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당사자간 법률관계의 최종 종착점으로 여겨졌고, 이기든 지든 판결이 나오면 기업은 그에 맞춰 인사·노무 정책을 재정비하고 리스크를 산정하고 다음 경영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재판소원제가 도입되어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헌법소원의 청구 가능성이 열려 있는 한, 당사자간 분쟁은 확정될 수 없고 기업 경영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특히 당사자간 분쟁이 장기화되기 쉬운 노동 분야에서 이 불확실성은 심각한 경영 리스크로 전환될 것이다. 이미 정기상여금 등 각종 임금의 통상임금성, 성과급의 평균임금성, 불법파견 소송 등은 대법원까지 소송으로 다투는 기간만 수 년에 달하는 사건이 부지기수인데, 여기에 재판소원 절차가 추가되면 하나의 노동 분쟁이 10년 가까이 미결 상태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결국 많은 노동사건과 관련한 인력 운용, 조직 개편, 임금체계 재설계 등 경영 판단의 시계(視界)를 좁히는 제도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법왜곡죄와 관련한 상황은 더욱 혼란하다. 법왜곡죄는 법관, 검사 또는 수사 직무수행자가 '타인에게 위법 또는 부당하게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법 왜곡행위를 해야 비로소 처벌이 가능하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사법거래를 한 판사, 검사 등이 이를 자백하는 녹취라도 남겨놓지 않은 한 이러한 목적의 입증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소한 당사자가 판사·검사 등을 법왜곡죄로 고소하는 것 자체는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고, 고소를 당한 법관·검사는 수사기관으로부터 피고소인으로 조사를 받아야 하는바 그 과정에서 소비되는 법관 등의 시간과 심리적 부담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결국 법관·검사는 판결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서 기존 판례를 벗어나는 새로운 법리 선언을 꺼리고 더 보수적인 해석을 선택하게 될 수밖에 없고, 합리적 해석 범위 내의 새로운 의견과 창의적 판단은 위축될 것이다.
노동 사건은 사법 내에서도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하게 대립하는 분야 중 하나이자 명확한 정답이 없는 특성으로 개별·구체적인 사건마다 사실 판단과 가치 해석에 있어 법관의 자의가 불가피하게 개입하여 왔다. 파업의 정당성, 노무제공자의 근로자성, 특정 금품의 임금성 등 노동법의 다양한 이슈에 대한 판단은 법관마다, 시대마다 달랐고, 이러한 판단의 유동성은 법관이 시대와 현실을 반영하는 해석을 내릴 수 있는 재량 공간이었으나 법왜곡죄는 이러한 재량 공간을 극도로 좁힐 것이다. 우리 사회의 특성상 근로자에게 유리한 해석을 선택한 법관이 패소한 사용자로부터 법왜곡죄 고소를 당하는 상황, 반대로 사용자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린 법관이 패소한 근로자나 노조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상황 모두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고, 이처럼 정해진 미래 안에서 개별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헌법 조항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여기에 지난 3월 10일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도 결합해보자.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를 원청까지 확대하고 쟁의행위 대상을 사업경영상 결정으로 넓힘으로써 이미 그 자체로 법원에서 수년간의 치열한 해석 논쟁이 예정되어 있는데, 여기에 재판소원제와 법왜곡죄가 겹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노란봉투법 하에서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하여 법원이 업무방해죄 유죄를 선고한다고 가정하면, 아마도 노조 측은 헌재에 재판소원을 청구하고 동시에 담당 법관·검사를 법왜곡죄로 고소할 것이다. 반대로 사용자 측은 법원이 하청 노조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사용자에게 교섭거부·해태의 부당노동행위 유죄 판결을 내릴 경우 그 재판에 대해 재판소원을 청구하고 해당 판결을 내린 법관·검사를 법왜곡죄로 고소할 것이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항소율·상고율을 보이는 우리나라 사법 현실에서 이러한 예상은 헛된 망상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성과 분쟁의 장기화는 지속적으로 경영 판단을 내려야 하는 기업에게 있어서 중장기 의사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소모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법부에 대한 통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인식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판사와 검사의 고의적 불법 행위에 처벌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원론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나 숙고 없이 떠밀리듯 급하게 처리된 재판소원제와 법왜곡죄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도구로서 타당할지는 너무나도 의문이다. 부디 이른바 ‘사법개혁’의 실험들이 노동 현장에 돌이킬 수 없는 혼란을 가져오지 않기를 마음 깊이 바랄 뿐이다.
송우용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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