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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셧다운·비닐 사재기…'한국 이대로 가다간' 공포가 현실로

입력 2026-03-23 17:27   수정 2026-03-23 18:09

‘석유화학의 쌀’인 에틸렌·프로필렌을 생산하는 나프타분해설비(NCC)인 전남 여수공장 등이 중동 사태 이후 처음으로 셧다운(가동 중단)에 들어간다. 호르무즈해협 봉쇄 충격이 번진 여파다. 생활 현장에선 비닐류 페트병 등의 재고 고갈로 ‘생필품 대란’ 위기에 놓였다. 일부 해외 공항은 국내 항공사에 “급유가 어렵다”고 통보해 항공 운항까지 멈추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산업 현장에 이어 실생활 전반에 연쇄 충격이 확산하고 있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내 항공사는 베트남과 일본 등 일부 공항으로부터 “기존 계약대로 급유할 수 없다”고 통보받았다. 이미 항공유 가격이 두 배 넘게 오른 상황에서 돌아올 연료를 구하지 못하면 항공사들은 비행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중동 사태는 ‘실물 공급 충격’으로 번지고 있다. 국내 최대 석유화학 기업인 LG화학은 이날 나프타 공급난에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업계에선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인한 나프타 공급 대란이 도미노 셧다운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공포가 확산하고 있다. NCC 가동 중단이 장기화하면 자동차, 전자제품, 건설 자재, 타이어 등 제조업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

생활 경제에도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프타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제품은 생활 전반에 걸쳐 사용된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비롯해 비닐류, 페트병, 화장품 용기, 식품 포장재 등 대부분 공산품이 영향을 받는다. CJ제일제당 빙그레 등 주요 식품업체가 보유한 포장재 재고는 1~2개월 수준에 그친다. 소부장특별법 석유사업법 등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 공급망에 치명적인 제품이나 원자재의 수급 차질, 가격 폭등이 우려될 때 생산·판매 명령과 수출 제한 등을 할 수 있다.
나프타 재고 3주 뒤 바닥…플라스틱·비닐제품 생산 중단 위기
산업계 덮친 중동發 '나프타 쇼크'…LG화학 여수2공장 가동 중단
LG화학의 나프타분해설비(NCC)인 전남 여수 2공장이 가동을 중단한 것은 2021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10대 NCC설비 중 전면 셧다운을 선언한 첫 사례다. 여천NCC도 여수 프로필렌 전용 공장(OCU)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나프타 공급 대란이 ‘도미노 셧다운’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는 비축유 방출 및 나프타 수출 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 ‘나프타 대란’ 10대 NCC가 멈췄다
업계에 따르면 LG화학은 23일 여수 2공장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수 2공장은 연간 에틸렌 80만t과 프로필렌 40만t 등 기초유분을 생산한다. LG화학에서 운영하는 대산공장, 여수 1공장에 이어 2021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신형 설비다. LG화학의 연간 에틸렌 생산량(330만t)의 24%를 차지했다.

LG화학이 2공장 문을 닫은 것은 나프타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어서다. LG화학은 NCC 가동에 필요한 나프타의 약 50%를 여수 GS칼텍스에서 조달한다. 나머지 절반은 일본 미쓰이물산 등에서 수입한다. 업계 관계자는 “통상 NCC공장은 일시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설비 재가동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해 가동률을 60% 이상 유지한다”며 “전면 셧다운에 들어간 것은 그만큼 원료 수급 차질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업계는 당분간 원유 수급이 불투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NCC 업체에 공급하는 나프타 물량을 조절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며 NCC 업체가 해외에서 나프타를 직접 구하는 길도 좁아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가동 중인 NCC 10곳의 나프타 재고를 약 3~4주일치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주요 NCC 업체인 여천NCC도 여수 프로필렌 전용 공장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간 14만t 규모 프로필렌 공정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여천NCC로부터 원료를 공급받는 한화솔루션, DL케미칼 등이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 “비축유 방출…나프타 수출 제한”
업계에서는 NCC와 5월 원료 공급분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이번 주를 데드라인으로 보고 있다. 이란 전쟁 이전 체결된 3~4월 공급계약 이후 전쟁 상황이 반영된 첫 공급계약이어서다. 울산지역 다운스트림 업계 관계자는 “NCC 업체들의 나프타 재고가 바닥나는 4월 중순부터 연쇄 셧다운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에 5월분 에틸렌 수급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고 했다.

산업통상부는 이날부터 호르무즈 해협 봉쇄 종료 때까지 중동 에너지 수급 상황 전반에 관한 일일 브리핑을 열기로 했다. 정부가 아랍에미리트(UAE)산 대체 물량 2400만 배럴을 확보했고, 4월 중순께 비축유 방출도 계획한 만큼 나프타 수급에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양기욱 산업부 자원안보실장은 “비축유 공급 시 생산되는 나프타를 국내로 돌리고, 수출제한, 긴급 수급조정 명령을 발동하면 가동 중단 위기 시점을 4월 말이나 5월까지 충분히 늦출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러시아산 나프타 등 중동산이 아닌 대체 수입처에서 나프타를 구입할 때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러시아산 원재료 사용에 따른 국제 제재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산 나프타를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러시아산 나프타로 생산한 제품을 유럽에 판매할 수 없는 ‘2차 보이콧’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정은/장서우/김대훈/안시욱/노유정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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