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티브 시니어 시대가 왔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며 우리나라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기대수명은 83.7세로 늘어났지만, 길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하다. 과거에는 은퇴 이후의 삶을 휴식과 정리의 시기로 여겼다면 이제 노년은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인생의 두 번째 곡선을 그리는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개념이 주목받는 이유다.
한경미디어그룹은 이러한 변화에 맞춰 시니어의 삶과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한경 액티브 시니어 아카데미(Active Senior Academy, ASA)'를 개설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대화를 통해 초고령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노년의 모습과 '웰 에이징(Well-aging)'의 방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늙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늙어갈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미리 보는 '한경 액티브 시니어 아카데미'를 통해 배우성 법무법인 대륙아주 상임고문에게 어떤 공동체 안에서, 어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어떤 환경 속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지 '시니어 주거'의 중요성에 대해 들어본다. 배 고문은 "노년의 삶은 건강·관계·배움뿐 아니라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선택에 의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노년을 집에서 보내는 것과 시니어 타운 같은 공동체에서 보내는 것 두 가지 개념과 관련해서는 "경쟁 관계라기보다 서로 보완하면서 시니어 주거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어 대표적인 시니어 주거 모델로 알려진 이른바 시니어 타운, 지속적 돌봄 은퇴 공동체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초고령사회에서 잠재적 수요도 충분한 만큼 머지않아 일반적인 시니어 주거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되나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제도적 정비, 정책적 지원 및 한국형 운영 모델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주목받는 모델로는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인 UBRC(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가 있다. 배 고문은 "캠퍼스 내 또는 그 인근에 조성된 지속적 돌봄 은퇴 공동체"라면서 "지속적 돌봄 은퇴 공동체의 가치에다 지속적 배움의 플랫폼과 세대 간의 교류라는 확장된 관계 플랫폼이 추가된 혁신적 주거모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액티브 시니어에게 있어 주거 역시 어떻게 늙느냐에 대한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나는 여전히 배우고, 움직이고, 만나고, 성장하고 있다'는 신념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배움이 멈추지 않고, 세대 간 교류가 이어지는 UBRC는 이들에게 새로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어디서 늙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노년을 설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배 고문은 말했다.
다음은 배우성 고문과의 일문일답.
▷ 왜 시니어 주거가 중요한가.
노년의 삶은 건강·관계·배움뿐 아니라 '어디서 살 것인가'라는 선택에 의해 완전히 달라집니다.
▷ 노년은 어디서 보내는 게 좋은가.
어디가 좋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인 면을 떠나서 우선 자기의 손때가 묻고 추억이 깃든 익숙한 집은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반면에 사회적 고립과 노화에 따른 지속적인 돌봄의 필요에 대한 걱정이 뒤따르지요. 반면에 공동체 내에서 지속해서 돌봄을 제공받고 관계와 연결 속에서 노년을 설계하는 것은 관계 속에서 고립을 피하고 더 오래 건강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바탕에 있습니다. 이 두 개념은 경쟁 관계라기보다 서로 보완하면서(재가요양서비스) 시니어 주거의 두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결국은 시니어 개인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란?
이 모델은 건강한 자립 생활에서 시작해 필요에 따라 보조 생활(assisted living), 전문 요양(nursing care) 나아가서 치매 요양(Memory Care)까지 한 공간 안에서 이어지는 주거체계입니다. 건강이 악화해도 이사할 필요 없이 관계를 유지하면서 익숙한 환경 속에서 계속 필요한 돌봄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심리적 편안이 이 모델의 본질이지요. 결국 지속적 돌봄 은퇴 공동체는 '돌봄의 시스템'이면서 동시에 '관계의 플랫폼'입니다.
▷ CCRC의 개발 및 운영 상황.
CCRC는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시니어타운의 일반적인 모델로 발달해 2024년 기준으로 미국에서 약 3000여곳, 일본에서는 약 2500여곳이 운영 중인 반면 국내에서는 수요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약 40여곳만이 운영 중이며 특히 현재 시니어 주거 공동체에 거주하는 시니어의 비율은 미국 11%, 일본 6%에 비해 한국은 요양원을 포함해도 2.6%에 불과한 시범적 실현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CCRC 모델의 주요 이점은 돌봄의 지속성으로 시니어의 노화에 의한 돌봄 요구가 변화함에 따라 다른 시설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 마음의 안정을 제공하나 현실적으로는 개발업체가 수요, 전문성, 비용, 입지 조건, 인력수급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커뮤니티가 제공하는 Care Level을 선택하는데 국내 대부분의 CCRC가 독립생활이 가능한 건강한 노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CCRC가 Full Lifespan Care를 무한정으로 제공하는 경우 계약에 따라 수입은 고정된 반면 노화의 진행에 따른 돌봄에 대한 비용은 급격히 상승함에도 CCRC는 대부분 자립형 주거시설이라 하여 장기 요양보험의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어 커뮤니티 재정이 악화하고 돌봄의 질적 하락을 초래하기 때문이지요. 향후 제도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부문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 CCRC가 중산층으로 지속해서 확대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 한국에서는 왜 CCRC 모델이 크게 확산하지 못했나.
현재 국내 실정에 맞는 한국형 CCRC 모델이 정착해가는 시기이나 CCRC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초고령사회에서 잠재적 수요도 충분한 만큼 머지않아 일반적인 시니어 주거 모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법적·제도적 정비, 정책적 지원 및 한국형 운영 모델의 정착이 시급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0여년 전에 일시적으로 붐이 불었을 때 분양 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영세한 관리업체가 파산하게 되어 CCRC의 분양을 정부에서 금지하게 되자 공급이 급감하게 되었습니다. 작년부터 일부 인구소멸지역에 정부에서 분양을 허가해주었지만, 아직 관련 투자가 활성화되기에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 또 다른 모델인 UBRC(University Based Retirement Community,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란?
대학 기반 은퇴자 공동체는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캠퍼스 내 또는 그 인근에 조성된 지속적 돌봄 은퇴 공동체를 의미하나 좀 더 들여다보면 그 진정한 가치와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속적 돌봄 은퇴 공동체의 가치에다 지속적 배움의 플랫폼과 세대 간의 교류라는 확장된 관계 플랫폼이 추가된 혁신적 주거모델이 바로 그것입니다
▷ 액티브 시니어에게 UBRC는 어떤 의미인가.
액티브 시니어에게 있어 주거 역시 어떻게 늙느냐에 대한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은 '나는 여전히 배우고, 움직이고, 만나고, 성장하고 있다'는 신념에 따라 이루어지므로 배움이 멈추지 않고, 세대 간 교류가 이어지는 UBRC는 이들에게 새로운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 UBRC의 탄생지인 미국의 상황은?
UBRC는 종래의 CCRC에 비해 다양한 장점을 보유하고 있어 스탠포드대학 등 유수한 대학들이 참여하여 2024년 기준 100여개의 UBRC가 운영 중이며 매년 증가 추세여서 10년 후 400여개로 늘어날 전망입니다. 배움과 세대 간 교류 측면에서 애리조나주립대의 미라벨라(Mirabella)와 뉴욕주립대 퍼체이스 칼리지의 브로드뷰(Broadview)가 가장 성공한 상징적 모델로 미국에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 실제로 어떤 형태의 배움과 세대 간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나.
미라벨라의 경우 입주민의 50%가 공식적인 강의를 듣고 90%가 멘토나 자원봉사 등 다양한 형태의 비공식 캠퍼스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입주민 중 5명의 은퇴 의사가 자발적으로 예비의사를 위한 실무 멘토링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월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환자나 가족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는 매너 등 학생들이 원하는 실무적인 아젠다에 따라 워크숍을 진행 중인데 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현재까지 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은퇴한 것이 아니라 대학으로 돌아온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지요.
▷ 한국에서는 부산 동명대, 광주 조선대 외에도 서울에 있는 일부 대학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나 구체적인 진행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개발업체의 시각에서 보면 UBRC의 진정한 가치와 충분한 잠재적 수요가 있다고 판단되고 요즘같이 도심에서 부지를 확보하기 어려운 때 매입하지 않고 장기간 임차로 개발의 기회를 제공하지만, 첫 삽을 뜨기까지 길을 내면서 가야하고 넘어야 할 허들이 많아 언제 골인 지점에 닿을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무엇보다도 초고령사회·액티브 시니어의 출현·학령인구의 감소 등의 도전과 기회에 대응해 평생교육 허브로서의 대학 역할의 진화, 시니어를 단순한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전문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경험·지혜·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가진 대학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새로운 인식, UBRC가 단순한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 간 통합을 연결하는 모델을 개척한다는 종합적 사고 위에서 이를 통하여 정체성과 브랜드를 강화하고자 하는 대학의 적극적 의지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관련 규제도 과감히 풀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 '늙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늙느냐는 선택이다'라는 말을 주거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우리는 결국 모두 늙습니다. 하지만 고립된 삶을 살 것인지, 공동체 속에서 살 것인지, 배우며 살 것인지, 돌봄만 받으며 살 것인지, 그것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어디서 늙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노년을 설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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