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안 해도 괜찮아, 머물러야 보이는 겨울 마르세유 [서숨의 카메라 너머의 여행]

입력 2026-03-27 16:33   수정 2026-03-27 16:34



한 해의 시작을 어디에서 맞이하느냐는 그해의 온도를 결정한다. 올해 나의 첫 여행지는 남프랑스의 항구 도시, 마르세유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머무르며 깨달은 것은 단순했다. 이곳은 화려한 관광지라기보다, 조용히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도시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남프랑스를 여름의 햇살과 휴양지의 이미지로 기억한다. 하지만 겨울의 마르세유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춥지 않은 공기, 한층 느려진 시간, 그리고 여행자보다 현지인의 일상이 더 많이 보이는 거리. 화려함 대신 여백이 남아 있는 계절의 풍경 속에서 오히려 이 도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마르세유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다. 파리에서 고속열차 테제베TGV)를 타면 약 세 시간 만에 도착하고, 경유 항공편을 이용해 바로 들어올 수도 있다. 근래 몇 년 간은 가을마다 뜨는 대한항공 직항 전세기로 이 오래된 항구 도시가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도시의 한 장면이 되는 순간
도시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언덕 위에 자리한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대성당이다. 낮에는 햇빛을 머금은 바다와 붉은 지붕들이 한눈에 펼쳐지고, 해질녘에는 도시 전체가 천천히 금빛으로 물든다. 그 풍경 앞에 서 있으면 여행자가 아니라 이 도시의 한 장면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마르세유가 유럽 문화 수도로 지정되며 문을 연 뮤셈(MUCEM·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은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상징적인 공간이다. 요새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며 바라보는 항구의 시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독특한 건축의 질감은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래된 동시에 얼마나 새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요새의 맨 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마르세유 항구와 바다의 풍경은 절경 그 자체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구(舊) 항구 비유포트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역설적으로 가장 완벽한 일정이 된다. U자 형태의 항구를 따라 걷거나 잠시 걸터앉아 겨울 햇살을 바라보는 순간, 여행의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진다. 때로는 페리를 타고 반대편으로 건너가는 짧은 이동조차 하나의 장면처럼 기억에 남는다.


골목의 색이 살아 있는 르 파니에와 꾸르 줄리앙(Cours Julien) 지구, 한적한 어촌의 분위기를 간직한 레 구드, 그리고 카시스와 마르세유 사이에 펼쳐진 깔랑끄 국립공원의 협곡까지. 이 도시의 아름다움은 특정한 명소 하나가 아니라 서로 다른 풍경들이 이어지며 만들어내는 리듬 속에 존재한다.




마르세유에서의 시간은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어떻게 머물렀는가’로 기억된다. 발롱 데 조프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보내는 느린 오후, 프리울 섬으로 향하는 배 위의 바람,그리고 축구 경기장 오랑주 벨로드롬을 가득 채운 열기. 여행은 풍경뿐 아니라 사람들의 감정까지 경험하는 일임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맛과 향으로 남는 마르세유
물론 미식의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부야베스 한 그릇에는 이 도시가 바다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히 작은 어촌 마을 레 구드의 프랑스 부야베스 챔피언 오너쉐프의 식당(Le Grand Bar des Goudes)에서 맛본 식사는 마르세유를 다시 찾고 싶은 이유 그 자체가 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여행의 기억이 결국 맛과 향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또렷이 실감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도시를 떠나던 날, 나는 이곳이 왜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비로소 이해했다. 마르세유는 무언가를 끊임 없이 보여주기보다 조용히 머물도록 허락하는 도시였다. 그래서 이곳의 겨울은 차가운 계절이 아니라 가장 부드러운 온도로 기억된다.

여행은 때때로 우리를 멀리 데려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 선명하게 바라보게 만들기 위해 찾아온다. 남프랑스의 겨울 항구에서 보낸 시간 역시 그랬다.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 풍경 하나가 한 해의 시작을 충분히 따뜻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떠나는 아쉬움 보다 이곳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예감이 더 또렷했다. 여행은 끝나도, 마르세유의 겨울은 그렇게 마음 속에 남았다.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호르무즈보스턴다이나믹스삼성전자다크소드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