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 브랜드 자라(ZARA)는 명품 '디올' 될 수 있을까

입력 2026-04-06 09:36   수정 2026-04-06 17:32



이탈리아 명품 구찌보다 높은 영업이익률, 고가 카테고리의 성장세, 안정적인 수익성 개선.

스페인 SPA 브랜드 ‘자라’가 그 주인공이다. 자라의 경쟁사는 더이상 H&M, 쉬인 등이 아니다. 가격 경쟁력과 트렌디한 디자인을 앞세워 명품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자라는 더 높은 가격대를 원한다. 자라 모회사인 인디텍스는 가격 인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패션 천재’로 불리는 존 갈리아노를 디자이너로 발탁했다. 디올, 메종 마르지엘라 등을 거치며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 패션계가 놀란 파격 선택, 존 갈리아노’ 누구길래
자라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이자 천재 쿠튀리에(재봉사)로 불리는 존 갈리아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로 발탁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다. 갈리아노는 자라 전체 디자인을 총괄한다.

영국인 갈리아노는 1960년생으로 배관공 아버지와 플라멩코 강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갈리아노는 어릴 때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이 컸다. 1966년 런던으로 이사를 가면서 흥미가 생겼고 이스트 런던 스쿨(East London School)을 거쳐 세인트 마틴스(Saint Martins) 예술학교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24세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컬렉션을 발표하며 패션계에 입문했다. 1987년 올해의 영국디자이너상을 거머쥐며 디자이너로서 성공했지만 경영에는 실패하며 입지가 좁아졌다. 이때 미국 보그 당시 편집장이던 애나 윈투어가 그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미국 은행으로부터 후원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갈리아노가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1993년 컬렉션이다. 애나 윈투어의 도움으로 17벌의 옷을 만들어 내놓았다. 컬렉션은 베르나르 아르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회장 눈에도 들어왔다. 지방시 창업자이자 디자이너 위베르 드 지방시 은퇴를 앞두고 새로운 디자이너를 물색하던 중 갈리아노를 발견한 것. 1995년 프랑스 브랜드 지방시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됐다.

1년 만에 다시 프랑스 명품 크리스찬 디올 수석 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겨 15년간 디올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 시기 매출은 4배로 증가했고 업계에서는 “갈리아노가 디올이 가진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1996년 12월 갈리아노 첫 패션쇼 론칭 파티에서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가 그의 드레스를 착용하면서 ‘왕실의 명품’이라는 수식어까지 생겼다. 다이애나가 선택한 디올 가방은 1996년 공식적으로 ‘레이디 디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다이애나 애칭인 레이디 디(Lady Di)에서 유래했다.

명성에 흠이 생긴 것은 2011년. 파리 한 카페에서 프랑스인 여성과 동양인 남성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고 고소를 당했다. 유죄 판결이 나면서 벌금까지 지불했다. 비슷한 시기 “나는 히틀러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동영상이 확산되면서 디올에서 해고당했다. 당시 디올을 이끌던 최고경영자(CEO) 시드니 톨레다노는 “갈리아노는 우리가 추구해 온 핵심적 가치에 상반되는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4년간 활동을 중단한 갈리아노는 2015년 프랑스 명품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 수석 디자이너로 복귀했다. 2024년까지 10년간 마르지엘라를 이끌며 브랜드의 전성기를 다시 써냈다. 과감하게 봉제선을 드러내고, 안감과 겉감을 뒤바꾸는 디자인을 보여주며 해체주의를 재해석했다. 또 업사이클링 제품 확대, 파리 외곽의 놀이터에서 진행하는 런웨이 쇼 등 새로운 시도에 나서며 새로운 역사를 썼다.


◆ 노리는 것은 명품 대체재’…인디텍스그룹, 주가 상승세 탈까
갈리아노는 마르지엘라를 떠난 지 2년 만에 다시 패션업계로 돌아왔다. 업계가 놀란 것은 명품 브랜드를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패션 매거진 보그는 “갈리아노가 또다시 창의적인 방법으로 업계에 복귀했다”고 평가했다.

패션업계에서는 “자라는 디자인이 필요한 게 아니라 문화적 영향력이 필요하다”며 “명품업계로 가기 위한 시도”라고 설명했다.

갈리아노는 자라 브랜드 아카이브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시즌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갈리아노는 자라의 과거 시즌 의상을 바탕으로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해 매 시즌 새로운 디자인과 창작물로 선보인다.

자라 모회사 인디텍스그룹은 2022년 마르타 오르테가가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된 이후 자라 고급화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마르타 오르테가는 자라 창업자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막내딸이다. 자라는 실제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스테파노 필라티 등 유명 명품업계 디자이너와 일회성 협업을 통해 인지도를 높여왔다. 다만 장기 계약은 갈리아노가 처음이다.

오트 쿠튀르(최고급 맞춤복) 제작 방식과 디자이너의 창의적 해석이 반영될 첫 컬렉션은 오는 9월 공개된다. 관련 추가 세부 사항은 추후 발표할 예정이다.

자라가 갈리아노를 앞세운 것은 가격 인상에 대한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다.

패션 매거진 BoF는 “자라는 대중 시장과 럭셔리 사이의 무언가를 원하는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제품 전략을 강화하고 평균 가격을 인상하고, 트렌디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선보이며, 프리미엄 매장 경험에 투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자라의 핵심 과제는 외형 확장과 수익성 개선이다. 그룹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하지만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어서다. 인디텍스그룹에 따르면 자라는 지난해 280억5100만 유로(약 49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년(277억7800만 유로) 대비 1% 증가했다. 세전이익(PBT)은 같은 기간 3.6% 늘어난 56억100만 유로다. 세전이익률은 20.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의 영업이익률이 16.0%를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명품보다 높은 수익성을 기록한 셈이다.

자라 실적은 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자라 모회사 인디텍스그룹 주가는 최근 3년간 꾸준히 오르고 있다. 2022년 브랜드 고급화 전략을 결정하고 매년 최고 실적을 써낸 영향이다. 실제 2023년 20유로대에 그친 주가는 이듬해 30유로대로 올랐고 2025년에는 40유로대에서 거래됐다. 올해 주가는 57유로까지 치솟은 이후 소폭 하락해 50유로 초반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갈리아노 디자인을 내놓으면서 가격을 인상할 경우 주가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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