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철저한 '돈로주의(거래주의)' 외교와 나토(NATO) 동맹국을 향한 "겁쟁이" 비난에 직면한 유럽이 마침내 '미국이 주도하던 낡은 동맹의 환상'에서 깨어났음을 알리는 역사적 장면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믿었던 '안보 우산' 미국은 철저히 자국 중심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전력망 폭격 위협을 가하다가 정체불명의 이란 관리들과의 '생산적 대화'를 이유로 돌연 폭격을 연기했다.(이란은 이튿날 즉각 협상 사실을 부인) 안보를 돈으로 환산하며 동맹을 폄하하는 미국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 앞에서, 유럽은 더 이상 미국의 뒤치다꺼리만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
폰 데어 라이엔 위원장이 앤서니 알바니스 호주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 채, "이제 협상 테이블로 돌아가 적대 행위를 종식시켜야 할 때"라며 독자적인 외교적 해결을 촉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항행의 자유는 국제법의 근본 원칙"이라며 이란을 강력히 규탄하면서도, 군사적 확전보다는 협상을 통한 실리적 위기 수습에 방점을 찍었다.
타깃은 명확히 중국을 향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의 수출 주도 성장 모델과 산업 과잉 생산 능력을 감당할 수 없으며, 감당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미국의 안보 비용 청구서'와 '중국의 자원 무기화'라는 양면 압박 속에서 유럽이 찾은 돌파구는 바로 호주다. 이날 EU와 호주는 핵심 광물(Critical Minerals) 수입 관세를 철폐하는 역사적인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특정 공급업체(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끊어내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핵심 국가와 직접 공급망을 구축하는 이른바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완화)'의 본격적인 신호탄이다.
폰 데어 라이엔 위원장의 이 발언은 현재 유럽의 스탠스를 가장 정확히 대변한다. 유럽은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과거처럼 맹목적으로 원칙만 부르짖는 순진한 파수꾼으로 남지는 않겠다고 선언한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의 '돈로주의'가 유럽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듯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유럽이 스스로 자원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지정학적 실리를 챙기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2026년 3월, 동맹의 청구서가 날아드는 시대에 유럽은 굴욕을 견디는 대신 '독자 생존'이라는 영리한 진화를 택했다.
특히 폰 데어 라이엔 위원장의 발언은 트럼프의 '관세 폭탄'과 중국의 '자원 무기화'를 동시에 직격했다. 그는 "강대국들이 관세를 지렛대로 삼고 공급망을 약점으로 악용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열린 무역이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거래(Transactions)보다 신뢰(Trust)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보를 돈으로 환산하는 트럼프의 '돈로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규칙에 기반한 예측 가능한 파트너십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번 협정을 통해 양측이 얻는 '윈윈(Win-Win)'의 이득은 천문학적이다. 호주는 4억 5천만 명의 거대 유럽 시장에 산업용 상품을 무관세로 수출하게 된다. 알바니스 총리는 "이 협정은 호주 경제에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 원)의 가치가 있으며, 세계 2위 경제 대국과 맺은 중대한 전환점"이라고 환영했다.
유럽 역시 확실한 실리를 챙겼다. EU 수출업체와 농가들은 연간 10억 유로(약 1조 4천억 원)에 달하는 관세를 절감하게 되며, 호주로의 수출은 향후 10년간 33%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정 국가(중국)에 치우쳤던 수출입 공급망을 성공적으로 다변화한 셈이다.
더 나아가 양측은 무역을 넘어선 '안보·국방 파트너십'까지 맺었다.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글로벌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정보 공유와 대테러 공조를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의 우산이 흔들리고 중동의 화약고가 터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유럽과 호주가 서로의 등을 맞대고 '관세'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거대한 동맹의 축을 완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석 한경디지털랩 PD youngsto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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