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지기 직전’ 롯데렌탈 딜…누구 책임인가

입력 2026-03-26 18:33   수정 2026-03-27 14:03

이 기사는 03월 26일 18:3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1년여전 1조8000억원에 달하는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주목받았던 롯데렌탈 딜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초대형 M&A 딜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심사 전면 불허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귀결됐고, 딜을 주도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의 민병철 대표도 물러났다.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롯데렌탈 매각을 추진한 롯데그룹도 거래 상대방이었던 민 대표 퇴진에 내부적으로 충격받은 분위기가 역력하다. 업계에서는 실패 원인을 놓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어피니티에 법률 자문을 제공한 법무법인 태평양의 책임론부터 2024년 도입된 공정위의 기업결합 시정방안 제출제도 무용론, 사모펀드(PEF)를 향한 정부의 강경 기류 등 광범위한 주제로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모양새다.
민병철 어피니티 대표, 사실상 경질

26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민 대표는 어피니티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퇴직 절차를 밟고 있다. 어피니티는 공식적으로 “민 대표는 휴가 중”이며 “현안을 차질 없이 운영 중이며 비즈니스 연속성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민 대표가 사실상 불명예 퇴진 수순을 밟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민 대표는 롯데렌탈 딜을 진두지휘한 인물이다. 롯데렌탈 인수가 공정위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하자 먼저 인수한 SK렌터카를 매각하고 1위 사업자 롯데렌탈을 품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민 대표가 다소 일방적으로 SK렌터카 매각이라는 승부수를 띄우자 펀드 출자자(LP)들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이에 어피니티 설립자 탕(Tang) 회장이 민 대표에 대한 경질성 인사 조치를 한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M&A업계는 공정위의 기업결합 불허 결정으로 PEF 운용사 대표가 사임까지 하게 된 상황에 적잖은 충격을 받고 있다. 롯데렌탈을 매각해 그룹 재무구조 개선을 꾀하려던 롯데도 민 대표의 공백으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했다.
“태평양, 전원회의 직전까지 낙관적 태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어피니티를 대리해 공정위 심의에 대응한 법무법인 태평양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졌다. 태평양은 어피니티가 SK렌터카를 인수할 때도 법률 자문을 제공했다. 민 대표는 SK렌터카 인수 때부터 롯데렌탈을 함께 품는 그림을 그리며 시너지 효과를 노렸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독과점 우려에 대한 법률 검토도 마쳤고,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받았기에 롯데렌탈 인수를 추진했을 거라는 게 IB업계 시각이다. 한 PEF업계 관계자는 “경쟁 제한성을 심사할 때 쓰는 정량 지표들이 있는데, 데이터상 기업결합심사에서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면 애초에 롯데렌탈 딜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10개월에 걸친 긴 심의 끝에 공정위는 전면 불허 결정을 내렸다. 거래 당사자들은 물론, 직접 공정위 실무진과 협상을 진행한 태평양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업계 일각에선 태평양이 지나치게 상황을 낙관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롯데렌탈 딜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태평양은 공정위 전원회의 직전까지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식이었다”며 “공정위 내부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지나치게 나이브하게 대응했던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매각 측인 롯데 관계자들도 공정위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위험을 감지했을 정도였는데, 협상 당사자인 태평양은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전언이다. 어피니티는 공정위의 기업결합심사 불허 결정이 나오자 자문사를 태평양에서 법무법인 세종으로 교체했다.
공정위 전원회의서 실무진 협의 뒤집혔나

‘태평양 책임론’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태평양은 공정위 실무진과 조건부 승인으로 협상을 마무리지었는데, 안건이 전원회의에 올라가면서 결과가 갑작스럽게 뒤집혔다는 얘기다.

2024년 8월 개정 공정거래법이 시행되며 공정위는 기업결합 자진 시정방안 제출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경쟁제한 우려가 있는 경우, 기업이 스스로 시정조치 계획을 제출해 심사 효율성을 높이고 신속하게 승인을 유도하는 제도다.

어피니티와 태평양도 이 제도를 활용해 자진 시정조치안을 제출했다. SK렌터카와 롯데렌탈 두 회사를 일정 기간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등 경쟁 제한성 우려를 해소하는 여러 조치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태평양이 마련한 시정조치 계획안대로 공정위에서 의결이 됐다면 조건부 승인이 나왔을 것으로 관측된다.

IB업계 일부 인사들은 태평양이 공정위의 분위기를 못 읽은 게 아니라, 공정위 실무진과 전원회의 입장이 급작스럽게 달라진 데서 딜이 좌초된 원인을 찾는다. 익명을 요청한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기업이 경쟁 제한성을 스스로 분석해 심사관과 협의해 시정방안을 제출해도 전원회의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면 제도 자체의 효용성이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PEF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태도가 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불허의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롯데렌탈 매각은 2024년부터 진행되던 거래였고, 그 사이 비상계엄과 대통령 선거 등이 이어지며 정권이 교체됐다. 홈플러스 사태 등으로 PEF 제도 규제를 추진할 정도로 새 정부는 PEF에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공정위도 어피니티의 롯데렌탈 주식 취득을 불허하면서 PEF의 볼트온 전략을 ‘시장 왜곡’ 등의 표현을 써가며 꼬집었다. 볼트온은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여러곳을 인수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것을 말한다.

송은경 기자 nor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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