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잘못이 아니에요”…씻김굿으로 상처를 위로하는 K뮤지컬 ‘홍련’

입력 2026-03-25 15:52   수정 2026-03-25 17:08



‘딸’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고도 아버지를 살릴 생명수를 찾아 떠난 ‘바리데기’,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쓴 언니 ‘장화’를 따라 차가운 연못에 몸을 던진 ‘홍련’.

한국 고전설화 속 가장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두 여성이 무대 위에서 만났다. 죽어서야 비로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들의 한(恨)은 구슬픈 가락이 아닌, 심장을 울리는 강렬한 록 사운드로 터져 나온다.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재연 중인 한국 창작 뮤지컬 ‘홍련’은 바리데기 설화의 주인공 바리데기와 장화홍련전의 홍련을 ‘사회적 약자’라는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바리데기는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며 자신을 희생하는 캐릭터로, 홍련은 언니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자기혐오에 빠진 가련한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재판장에서 만난 두 인물의 이야기는 폭발적인 록 음악에 실려 관객에게 카타르시스와 동시에 깊은 위로를 전한다.



최근 서울 중구 CJ제일제당 본사에서 만난 배시현 작가와 박신애 작곡가는 “‘홍련’은 사회적 약자의 상처를 재해석한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배 작가는 현대 사회의 비극에서 작품의 실마리를 찾았다. “왜 우리 사회는 누군가 죽고 나서야 문제를 인식할까?”라는 질문이 출발점이었다.

아동학대나 산업재해처럼 비극이 벌어진 뒤에야 주목받는 사회적 문제가 마치 죽어서야 사또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고전 설화의 원혼과 닮았다고 느낀 것이다.

“바리데기와 홍련은 남아선호 사상과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가정 학대를 겪은 ‘피해자’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바리데기는 흔히 ‘효’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부모의 사랑을 갈망했던 버려진 딸이기도 하죠. 홍련 역시 새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하던 언니 장화를 지켜주지 못한 또 다른 피해자입니다. 바리데기가 홍련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위로해주는 인물로 재해석하는 식으로 두 서사를 결합했습니다.” (배 작가)

‘홍련’의 무대는 망자의 한을 씻어내는 ‘씻김굿’을 연상시킨다. 박 작곡가는 “대본을 읽자마자 홍련의 한이 굉장히 깊다고 느꼈고, 이 한을 풀기 위해선 목청 높여 노래하는 록 장르가 어울릴 것으로 생각했다”며 “한국적 정서를 담기 위해 거문고와 같은 국악기를 활용하고 전반적으로 국악적 선율을 작품에 입혔다”고 말했다.



유독 고음 넘버가 많은 구성에 대해선 “작품을 아끼는 배우들이 캐릭터의 감정을 관객에게 더 처절하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 고음 마디를 늘려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며 “매회 탈진할 정도로 혼신을 다하는 배우들의 열정 덕분에 에너지가 넘치는 무대가 완성됐다”고 했다.

이 작품은 2022년 청년 뮤지컬 창작자를 지원하는 CJ문화재단의 스테이지업 프로그램에 최종 지원작으로 선정됐다. 2024년 초연 후 지난해 제9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작품상(400석 미만 부문)을 수상했다.

중국어 버전으로 광저우와 상하이 관객도 만났다. 배 작가는 “한국과 중국 관객이 같은 지점에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자신을 귀하게 사랑하라’는 작품의 메시지는 국경을 넘어 결국 모두가 듣고 싶어 하는 위로의 말이기 때문에 공감을 얻은 것 같다”고 했다.

“관객들의 마음속에 묵은 상처가 있다면 영원한 상처로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홍련이 바리데기를 만났듯, 이 세상에는 언제나 나와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어요.” (배 작가)

공연은 오는 5월 17일까지.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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