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남쪽은 매화가 한창이고, 우리 집 창문엔 목련이 벙글기 시작했다. 봄이 오니까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터진다. 며칠 전 일어난 안타까운 대전 공장 화재 사고부터 먼 나라 전쟁 소식까지. 이런 날에는 희망이라는 말이 멀기만 한데, 봄이 오는 길목엔 ‘로또명당 1등 당첨자 55명’이란 선전 문구가 펄럭인다. 여전히 사람들은 복권을 산다. 삶의 희망은 바닥났어도 복권 한 장에 걸 희망은 남아 있기 때문일까. 사람들의 희망이 꽃망울처럼 부푼다. 칠순이 한참 지난 엄마도 매주 복권을 산다. 칠십 평생 한 번도 당첨된 적 없으면서 사고 또 산다. 저렇게 속고도 또 속고 싶을까. 책방 사장님 차를 얻어 타고 복권방 앞을 지나는데 김은지 시인이 말했다.“줄이 긴 걸 보니 오늘이 토요일인가 봐요.”
토요일마다 줄 서는 복권 집은 명당이다. 확률적으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줄을 서서 사는데 1등이 안 나오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내가 아는 사람 누구도 당첨된 적 없다. “희박한 확률에 왜 헛돈을 쓰는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책방 사장님이 자신도 자주는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복권을 산다며 거들었다.
“음료 한 잔 안 먹고 그 돈으로 복권을 사는 거죠. 당첨되길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은 삶의 활력이 되니까.”
그런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김은지 시인이 불쑥 말을 던졌다.
“사장님, 음료 한 잔 덜 먹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데요.”
웃음이 터졌다. 정말 음료 한 잔 덜 먹기란 너무 힘든 일이다. 남들이 음료를 시킬 때 혼자 음료를 시키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런데도 음료 한 잔 덜 먹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내가 신기했다.
아빠는 담배를 안 태우는 대신 복권을 사는 거라고 했고, 엄마는 껌값인 셈 치고 복권을 산다고 했다. 혹시 엄마 얘길 쓰면 싫어할까 봐 오랜만에 전화를 했다.
“엄마, 복권 매주 산다고 글에 써도 돼?”
“그래? 그럼 더 자세히 얘기해줘야겠네.”
“아니, 괜찮아.” “얘 좀 봐. 작가라는 애가 괜찮긴 뭐가 괜찮아. 글을 대충 쓰면 되니. 네가 글에 쓴다니까 아무래도 더 자세히 얘기해 주는 게 좋겠어. 엄마는 매주 목요일에 사. 엄마가 복권 사는 데 1주일에 1만원씩 썼거든. 듣고 있니?”
몇 번이나 그만 말해도 된다고 했지만, 엄마의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복권 기금이 좋은 일에 사용되니 일종의 기부다. 술 마시고 흥청망청 쓰는 것보다 낫다. 이 밖에도 복권 구매를 합리화할 만한 이유는 무궁무진하구나 싶었다.
나도 오늘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복권 한 장을 샀다. 복권 사러 가는 길에서 만난 시누이네와 저녁까지 같이 먹었다. 오고 가는 근황 속에서 시조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이란 일생일대의 가장 큰 복권을 사서 긁어가는 일이 아닐까. 결혼한다는 말을 앞에 두고 있으니, 결혼이 참 좋은 일 같다. 지나고 나니 알겠다. 미처 알지 못한 아름다움이 삶에 설탕처럼 묻어 있었다. 어제는 욕조에 들어가서 카메라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는 어릴 적 아이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그땐 왜 그렇게 힘들었을까. 지금은 그때가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이렇게 뒤늦게 깨닫게 되는 삶이 복권이 아닐까 싶다. 아, 내가 긁지 않는 여행 복권도 있다. 아직 봄도 오지 않았는데, 겨울에 떠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복권은 꽝인지 아닌지 긁어봐야 알 수 있듯 여행도 발로 땅을 밟아봐야 알게 될 테지만, 하나 다른 게 있다면 어떤 인생에도 꽝은 없다는 것 아닐까.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