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사시 최연소-김앤장 8년'…92년생 워킹맘의 파격 변신 [본캐부캐]

입력 2026-03-29 12:17   수정 2026-03-29 13:55


그야말로 1등 인생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들만 모인다는 대학에 입학해 졸업도 하기 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해 최연소 합격자였다. 이후 국내 1등 로펌이라는 곳에 들어가 변호사로 일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남들이 보면 부러울 게 없어 보이는 완벽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1등 로펌을 그만두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을 때, 그제야 "공부가 재밌을 수 있다는 걸 처음 느꼈다"고 했다. 올해 2월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전문 번역가로 일하게 된 박지원 씨의 이야기다.

박씨의 삶은 언뜻 보면 완벽에 가까웠다. 1992년생으로 서울대 경영대 재학 시절 사법시험에 합격해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로 8년을 보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갖고 보수를 받았지만 그는 "공허했다"고 했다.

"부모님이 강조했던 말이 '공부를 잘하면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거였어요. 의사, 판사, 변호사. 그런 직업이 성공이라 생각하셨고 저도 그런가 보다 하고 공부했죠. 사법시험도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간 것 같아요. 승소했을 땐 좋았어요. 보람도 느꼈고요. 그런데 힘들 때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밤을 새우고 읽기 싫은 기록을 들여다봐야 할 때, '왜 이렇게 살까' 싶은 거예요. 경제적 보상도 있고 사회적 지위도 있었지만,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라는 것, 그게 문제더라고요."

좋아하지 않는 일을 앞으로 30년 이상 더 해야 한다는 사실에 박씨는 더 "갑갑함을 느꼈다"고 했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던 때, 업무를 보다가 마주하게 된 통역사를 보면서 "직업인을 보며 '재밌겠다, 좋아 보인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을 보며 '멋있다'고 하지만, '내가 해볼까'라는 생각은 많이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건 달랐어요. 내 옆에 있는 현실의 직업 중 '재밌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직업이었어요."


이후 그의 남다른 언어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됐다. 언어에 관심이 많아 전공도 아닌 영어, 일본어 수업을 대학교 때 듣고, 표준어를 쓰는 말투에서도 사투리 억양을 찾아냈다. 이러한 그의 강점들을 "국어 만점을 받는 것 이상으로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통역사를 보면서 '이런 게 있었구나' 싶었다"고 전했다.

"1년은 고민했던 거 같아요. 잘 됐을 때와 안 됐을 때를 번갈아 상상하며 후회의 총량을 계산했죠. 결론은 명확했어요. 안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클 것 같았죠.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했고, 합격 후 과감하게 퇴사했어요."

임신과 출산, 육아를 병행하며 대학원 생활을 했고, 그는 이 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일상을 공유해왔다. 로펌을 그만뒀다고 해서 해야 할 것들이 줄어든 게 없었지만, "공부가 처음으로 재밌었다"고 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이 놀라는데, 이전까지 저에게 공부는 해야 하니까 했어야 하는 거였어요. 학교 공부도 그랬고, 사법시험도 그랬죠. 그런데 통번역 공부는 다 너무 재밌는 거죠. 좋아하는 걸 하면 힘들어도 괴롭지 않다고 하는데 정말 그렇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공부를 했는데도 재밌다니, 신기했어요."

이 와중에 12년 동안 이어온 취미 생활 폴댄스도 틈틈이 병행했다. "어떻게 시간 관리를 하며 일상을 사느냐"는 질문에 박씨는 웃으며 "제가 행복해야 아이들에게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아이 케어는 믿을 수 있는 분에게, 저보다 전문가분들에게 맡기고, 전 제가 하고 싶은 공부, 폴댄스와 같은 것들에 집중했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육아를 '외주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에 대해 그는 거리낌이 없다. 아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 보상 심리가 생기고, 그 보상 심리가 결국 관계를 망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아이가 뭐가 되든 엄마랑 사이가 좋았으면 하는 게 제 목표예요. 그러려면 제 인생을 희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필요한 공부 다 하고, 아이는 나보다 잘 봐주시는 분들께 맡기고, 남은 시간에 웃어주고 사랑해 주는 게 더 낫다고 확신해요."

유튜브 운영은 퇴사 결심을 굳히기 위한 도구로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 두 개를 한꺼번에 시작하면 뭔가 더 강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카메라 켜는 법도 몰랐던 박씨는 컨설팅을 받으며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조언을 들었고, 그 결과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서울대 졸업생을 인터뷰하는 곳에서도 유튜브를 보고 연락이 왔고, 이후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도 나가고 책 출판 제안도 받게 됐죠. 돌아보면 그 모든 기회의 뿌리는 유튜브였어요. 별 볼 일 없는 동기에서 시작했는데 파급효과가 컸죠."


이달 출판된 박씨의 책 '1등을 그만두기로 했다'도 그렇게 탄생했다. 처음에는 "자기소개서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이후 2~3개월 만에 완성한 책에는 그의 도전의 시간들이 솔직하고 빼곡하게 담겨 있다.

박씨는 저서 출판과 함께 '클래스101' 강연도 시작했다. 본래 시간 관리법에 대해 강의를 해줄 것을 제안받았지만, 그는 "행복하게 육아하는 법을 공유하고 싶었다"면서 두 아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와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고민했고, 실천했던 방법들에 대해 전하기로 했다.

정규직에서 학생으로, 다시 프리랜서로 신분이 바뀌면서 "작년까지는 졸업만 하면 통역사가 될 수 있다는 꿈에 부풀었는데, 막상 일을 찾으려니 막연한 낙관론이 사라졌다"고 털어놓으면서도 지난 선택들에 "후회는 없다"는 그다.

"AI가 밀어닥치고 있고 생각보다 시장은 작고, 프리랜서로 첫발을 내딛는 사람이 인맥을 쌓는 게 쉽진 않지만, 일단 통역·번역 분야에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게 목표예요. 플래카드 들고 홍보하는 건 못하지만, 책도 쓰고 강연도 하고 유튜브도 하면서 하고 있는 거죠. 당분간은 들어오는 번역 일을 착실히 하면서 강연과 유튜브로 접점을 넓혀가려고요."

혹시 안 됐을 때의 플랜B를 물었더니, 특유의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변호사로 돌아가면 되죠. 큰맘 먹고 돌아갈 결심도 이미 했어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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