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퇴 11년 차인 70대 박씨는 최근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에서 십수 년간 투자해온 예금 상품을 해지하고 코스피200지수와 반도체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수했다. 그는 “물가가 올라 자산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변동성을 감수하더라도 주식형 ETF에 투자해 자산 수명을 늘리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을 안전자산에 묻어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예금 등 원리금 보장형에 묶여 있던 퇴직연금 자금이 ETF, 주식형 펀드 같은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퇴직연금 자산 배분도 한층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미래에셋증권 퇴직연금 계좌에서 실적배당형 상품인 주식형 펀드·ETF 편입 비중은 54.9%에 달한다. 2020년 말까지만 해도 35.2%였지만 코스피 랠리가 본격화한 작년 말 처음으로 편입 비중이 50%를 돌파한 뒤 계속 높아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형과 혼합형 상품은 각각 10%대 초반에 머물렀다.
퇴직연금 ‘머니무브’를 가속화한 건 압도적인 수익률 격차다. 지난해 말 기준 실적배당형으로 운용한 확정기여(DC)형 계좌의 1년 수익률은 평균 18.2%인 반면 예금성 상품만 담은 계좌 수익률은 연 2.86%에 그쳤다. 운용 방식에 따라 수익률이 약 여섯 배 차이를 보인 것이다. 3년 누적 수익률 격차 역시 11.5%포인트로 크게 벌어졌다. 김동엽 미래에셋증권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퇴직연금을 비롯해 장기 투자의 가장 큰 취약점은 인플레이션”이라며 “물가 상승에 따른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의 연금 투자 성향도 한층 공격적으로 변했다. 20대와 30대의 실적배당형 투자 비중은 각각 57.1%, 69.6%다. 5년 전 20대(44.5%)와 30대(58.1%) 수치와 비교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이들이 투자한 상품의 60% 이상은 주식형 ETF 등 위험자산에 집중됐다. 연금자산을 핵심 투자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은퇴기에 접어든 70대 이상 ‘실버 개미’다. 사회 통념상 안전자산 비중을 극대화해야 할 시기지만 이들의 실적배당형 비중은 2020년 30.6%에서 올해 1월 72.2%로 껑충 뛰었다.
이들은 투자 자산의 절반 이상(54%)을 주식형 상품에 묻어뒀다. 안전성이 높은 채권형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며 화폐 가치가 하락하자 고령층 역시 과감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수명이 늘어나면서 자산 고갈을 막는 것이 은퇴자의 최우선 과제가 됐다”며 “주식 노출도를 높여 연금 자산 수명을 늘리려는 고령 투자자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1년간(올 2월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 수익률 상위 5% DC·IRP 계좌에서 가장 많이 편입된 종목 1위는 ‘TIGER 반도체TOP10’이다. SK하이닉스·삼성전자 등 ‘반도체 투톱’이 전체 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반도체 집중 투자 ETF다. 최근 1년 수익률이 239%다. 이어 ‘KODEX 반도체’(4위) ‘TIGER 반도체’(6위)를 비롯해 ‘TIGER 2차전지소재Fn’(7위) ‘SOL 조선TOP3플러스’(8위) 등 국내 주도 산업에 투자하는 테마형 상품이 상위권을 싹쓸이했다. ‘TIGER 200’(2위) ‘KODEX 200’(3위) ‘KODEX 코스닥150’(10위) 등 국내 시장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ETF도 대거 매수했다.
양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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