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산 헬륨 끊기면 반도체 위태…항공사 '알짜 노선'도 포기

입력 2026-03-27 17:33   수정 2026-03-28 01:22

미국·이란 전쟁 한 달 만에 항공유와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뛰며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산업 현장이 흔들리고 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석유화학제품 기본 소재인 나프타 공급이 끊기자 플라스틱, 페인트, 자동차 내·외장재 등 전 영역으로 충격이 번졌다. 한국 수출의 핵심인 반도체 핵심 공정에 쓰이는 헬륨 공급까지 꼬이면서 불안이 커지고 있다. 산업계에선 “가격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자체가 뒤틀리는 전례 없는 사태”라는 우려가 나온다.
나프타 가격 두 배로 치솟아

27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달 27일 이후 주요 산업재 가격이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 나프타 가격은 배럴당 68.87달러에서 117.62달러(25일 기준)로, LNG는 100만BTU(열량 단위·1BTU=25만㎉)당 10.725달러에서 20.495달러(26일)로 상승하며 두 배 수준에 근접했다.

여기에 텅스텐옥사이드와 알루미늄, ABS(아크릴로니트릴 부타디엔 스티렌) 등 금속·재료 가격까지 상승하며 전방위적인 비용 압박이 산업 현장을 짓누르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 원료 부족으로 지난 23일 LG화학이 나프타분해설비(NCC)인 전남 여수 2공장을 셧다운(가동 중단)한 게 대표적 사례다. 연간 에틸렌 80만t을 생산하는 핵심 설비가 멈추면서 다운스트림 산업 전반에 파장이 예상된다.
반도체 소재 헬륨 50% 올라
또 다른 변수는 헬륨이다.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헬륨의 현물 가격은 전쟁 후 50% 이상 상승했다. 원자가 작고 가벼운 헬륨은 반도체 공정 장비 내부의 잔여 가스를 제거하는 데 쓰인다. 현재로서는 헬륨 역할을 대체할 물질이 없다. 한국은 작년 기준 헬륨의 64.7%를 카타르에 의존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체 거래처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비철금속 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알루미늄과 텅스텐옥사이드 등 가격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오르며 반도체·전자산업의 원가 부담을 키웠다. 구리와 알루미늄은 국내 비철금속업계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품목이라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항공 유류할증료 세 배 인상
고유가에 항공업계는 휘청이고 있다. 싱가포르 항공유(MOPS) 가격은 전쟁 전 갤런당 92.67달러(2월 넷째주 평균)에서 최근 179.50달러(3월 둘째주 평균)로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견디지 못한 저비용항공사(LCC) 티웨이항공에 이어 대형항공사(FSC) 아시아나항공까지 비상 경영을 선언했다. 항공사 전체 비용의 30%를 차지하는 항공유 가격이 두 배 가까이 오른 가운데 환율 상승까지 겹치며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해서다.

베트남 등 일부 공항은 외국 항공사 급유를 제한하면서 연료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벌어졌다. 에어부산 등 항공사는 인기 노선까지 감편하며 대응에 나섰다.
유조선 운임 78% 급등
유조선 몸값도 뛰고 있다. 중동~중국 항로 기준 유조선 운임지수(WS)는 전쟁 전 224.72(2월 27일)에서 400.6(3월 20일)으로 78% 급등했다. 해운시장에서 ‘운임 폭등에 이은 선복 부족’의 악순환이 나타난 여파다. 유조선 운임 급등으로 원유 수송 비용이 크게 올랐고, 이는 다시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는 구조다.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시장에서는 중고선 가격이 신조선을 웃도는 이례적 현상까지 나타났다. 대규모 VLCC 선대를 확보한 장금상선은 운임 협상력을 바탕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부 계약에서는 하루 80만달러 수준의 초고가 용선료가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는 중동 사태가 ‘전 산업의 공급망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 원자재 공급 차질, 해운 운임 폭등이 동시에 발생하며 산업 전반의 비용 구조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지금은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구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며 “전쟁이 장기화하면 항공·석유화학·반도체·자동차 등 주력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정은/강해령/노유정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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