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사수는 전세를 일거에 바꾼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미국과 중국이 산업의 판을 뒤흔들고 있는 작금의 절대 위기 상황에서 울산과 부산, 경남, 그리고 이 지역과 불가분의 경제적 관계에 있는 포항과 경주 등 동남권이 한국 경제의 새로운 탈출구를 열어줄 것인가?
한국 산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할 때 동남권, 그 중에서도 제조 도시 울산과 철강 도시 포항이 갖는 중요성은 이처럼 각별하다.
세계는 지금 대(大)혼돈기다. 미국, 중국, 유럽연합 등 대국이 저마다 자국 중심주의 또는 지역 중심주의의 대전환을 외치는 환경에서 소국은 줄서기를 강요받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던 ‘안미경중(安米經中)’가설부터 처참하게 깨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지켜줄 것인가. ‘아메리카 퍼스트’는 경제마저 위협하는 형국이다. 거대시장 역할을 해주던 중국은 한국 산업을 초토화할 기세다. ‘대만 유사시’ 같은 안보 위협은 설상가상이다.경제는 최선‘(best)’을 추구하고, 안보는‘최악(worst)’을 대비한다. 경제와 안보가 서로에게 불편한 이유다. 경제와 안보는 자원배분에서도‘제로섬 게임’ 관계다. 하지만 이 가설도 통째로 뒤집히고 있다. 세계는 약육강식이라는 지정학, 경제를 무기로 이용하는 지경학이 그 배경이다. 대국의 국익 우선주의는 경제와 안보를 ‘패키지‘로 묶는다.
대국이 국가 안보와 공급망 위험관리, 기술적 리더십의 이름으로 통제하는 전략산업은 ‘경제와 안보 교집합’이다. 그중에서도 인공지능(AI)과 에너지, 두 가지가 키워드다. AI발(發) 대전환은 경제와 안보 간 경계 붕괴를 가속화하고 있다. AI 없는 경제, AI 없는 안보는 상상하기 어렵다.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없는 경제, 에너지 없는 안보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전략가 앨프리드 머핸은 바다를 장악할 해군력(함정, 병참보급기지 등)과 무역을 할 상선(조선업, 항만, 선원 등)이 해양 패권의 승부수라고 했다. 미국이 해양 강국이 된 이유다. 그런 미국이 중국을 만났다. 중국도 이 가설을 따라 해군력 강화, 대만과의 양안 통일 추구, 지배 해역 확대로 나오고 있다. ‘해양의 신(新)지정학’시대다.
한국이 이 틈바구니를 파고들었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이른바 ‘마스가(MASGA)’를 한·미 간 전략적 분업 카드로 내밀었다. 한국이 조선 특화 AI를 빨리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조선 AI를 주도하면 그것은 곧 경제안보의 전략자산이 된다.
다음은 철강 도시 포항이다. 미국이 철강관세 동원은 물론이고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과정에서 유사시 조건 추가를 불사한 이유는 자명하다. 철강이 경제와 안보 양 측면에서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철강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AI 전환과 함께 저탄소 친환경 전환이 관건이다. 이 대목에서 두 전략도시 울산과 포항이 공동운명체로 엮이고 있다. 철강은 또 다른 경제안보 산업인 조선과 수급관계다. 나아가 철강이 저탄소 친환경 전환으로 가는 로드맵에는 수소환원철이 있다. 경제안보 차원에서 철강을 지키려면 수소 도시를 꿈꾸는 울산과 철강 도시 포항의 전략적 연대가 요구된다.
먼저, HD현대와 UNIST 간 협력이다. 양 기관은 배 건조를 위한 설계에서부터, 생산계획, 작업현장에 이르기까지의 조선 산업 전주기를 통찰하고 각 단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조선 특화 멀티모달 AI 두뇌’ 개발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UNIST와 HD현대는 ‘조선 AX 공동연구소’를 설립할 것이다. ‘국가 초격차 조선기술 테스트베드’ 가 기대된다.
다음으로, POSCO와 UNIST 간 협력이다. 양 기관은 철강 소재를 넘어 ‘미래 첨단 신소재 발굴을 통한 글로벌 리더십 확보’를 목표로 협력한다. 상호 유기적 협력을 위해, UNIST와 POSCO는 ‘미래 소재 AX 공동연구소’를 유니스트에 설립한다. AI 시뮬레이션을 통한 초고속 소재 설계, 피지컬 AI 기반의 로봇화, 공정 전반의 자율 제조화, 그리고 AI 기반 스마트 안전 작업 플랫폼 기술 등을 구현할 것이다.
유니스트는 HD현대와 포스코와 함께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산학협력 모델을 선보일 계획이다. 협력 범위도 AI뿐 아니라 에너지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UNIST와 포스텍이 그렇다. 포스텍은 스타트업 혁신도시 포항에서 세계로 가자는 ‘퍼시픽 밸리(Pacific Valley)’를 추구하고 있다. UNIST는 딥테크 창업중심대학의 모델이다. 대륙으로, 해양으로 나아가는 ‘투윙스 밸리(Two Wings Valley)’가 UNIST의 창업 비전이다.
UNIST와 포스텍, 두 연구중심대학이 손을 잡으면 바로 KAIST 규모를 뛰어넘는다. 수도권은 물론 글로벌 차원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춘 딥테크 창업 플랫폼이 남부경제권을 이끌 것이다.
경제안보 시대에 세계적으로 투자가 늘어날 가장 확실한 분야는 국방이다. 미국과 중국의 국방비 투자 증대는 말할 것도 없다.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도 국방비 지출을 GDP의 2%가 아니라 3%, 4%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한국, 일본 등도 그렇다. 국방비 지출 증가는 경제안보 산업의 시장 확대로 이어진다. 여기에 북극항로 시대가 가세하면 경제안보 관련 산업에 엄청난 새로운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한국이 국가로서 ‘실존적 위협’을 해소하려면 전략적 자율성(특정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 탈피)과 전략적 불가결성(한국만이 제공할 수 있는 전략자산 창출) 확보가 급선무다. 이재명 정부의 5극 3특 지역 균형전략은 경제안보 산업의 전략적 육성과 재배치로 발전해야 한다. 그 최적 시험대는 울산과 포항, 나아가 부산, 경남, 경주까지 포함한 동남권이 될 것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혁신클러스터는 ‘규모화’와 ‘특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울산과 포항, 나아가 부산, 경남, 경주가 뭉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동남권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원 UNIST는 그 설립 취지대로 이 지역을 미래세대가 꿈을 키울 수 있는 세계적인 초일류 혁신지대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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