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화학 사고…'사람' 중심 국가 안전망 구축 나서야

입력 2026-03-29 16:03   수정 2026-03-29 16:09

산업기술의 발전과 함께 우리가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는 빠르게 지금 이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산업발전의 이면에는 ‘화학사고’라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2012년 발생한 구미 불화수소 사고는 우리 사회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겼다. 현장근로자들의 안타까운 인명피해와 인근 지역의 식물들이 말라 죽고 가축들이 살처분되는 등 유례없는 ‘환경 재난’의 참상을 목격해야 했다. 당시 우리는 첨단 산업의 화려한 외형 뒤에 가려진 부실한 안전관리와 전문성 부재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구미 사고 이후 화학물질관리법 제정, 화학재난합동방재센터 및 기후에너지환경부 소속기관인 화학물질안전원이 생기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화학물질안전원의 화학사고 통계자료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화학물질안전원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화학사고 발생 건수는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특정 업종이나 노후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사고 원인의 상당수가 여전히 ‘시설 관리 미흡’과 ‘취업자 부주의’라는 점은, 우리가 하드웨어적인 규제에만 치중했을 뿐 현장을 움직이는 ‘사람’의 전문성 강화에는 소홀했음을 의미한다.

지금부터라도, 화학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전문성 강화에서 지향해야 하는 방향의 핵심은 ‘사람’이다. 즉, 현장의 ‘재난관리 전문가’ 육성을 우선해야할 것이다.

구미 사고 당시 초기 대응의 혼선은 화학물질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하는 전문가의 부재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화학사고는 물질마다 대응 방식이 상이하고 현장의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하므로 고도의 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 인력이 현장을 지켜야 한다.

첫째, ‘현장’의 인력 양성, 즉, ‘현장형 재난관리 전문가’ 육성이 최우선이다. 통계적으로도 상당수의 사고가 ‘시설 결함’과 ‘작업자 부주의’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결국 현장에서의 인적오류를 의미한다. 단순히 매뉴얼을 숙지하는 수준을 넘어, 고도의 화학적 지식과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춘 ‘현장의 재난관리 전문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산업계는 생산을 위한 인력, 생산관리 및 현장관리를 위한 인력에만 집중하고 있고, 역설적이게도 우리 생산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을때,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재난관리 전문가는 부재하다. ‘환경안전팀’이라는 이름으로 현장 관리와 각 법률에서 원하는 기준을 따라가기에만 급급하다. 즉, 사고발생 초기에 숙련된 전문 대응 인력의 부족 및 부재로 인하여 사고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골든타임’ 사수가 어렵고 이런 상황을 대부분 국가재난관리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

(학) 대학의 전문 교육과 산업현장의 실무를 연계한 특화 커리큘럼, (민)기업 내 화학사고를 예방하고 초기대응하기 위한 재난관리 전문가 충원, (관)현장 재난관리 전문인력의 법제화 등이 지금보다 더욱 강화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이를 통하여 현장에서부터 화학 안전이 지켜지는 ‘예방’이라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재난 담당 공무원의 처우 개선과 실질적 전문성 강화가 시급하다.

재난 관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아무나 할 수 없는 전문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난 관리 체계의 최후 보루인 공무원 조직의 현실은 냉혹하다. 격무와 심리적 압박, 그리고 순환보직으로 인해 전문성을 쌓을 겨를도 없이 자리를 이동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재난관련 업무는 국가현안 및 운영과는 조금은 별개로,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오로지 국민의 생명, 재산, 환경만을 생각할 수 있는 독립조직 속에서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이 근무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공무원의 구조는 현안업무를 하는 정부조직 내 재난담당 공무원들이 함께 업무를 하고 있는 구조이다보니, 누구나 ‘기피’하는 업무가 되어가고 있다. 이로 인해 오랜 시간 그 자리에 있지 않으려는 상황이 반복되는 구조가 되었다. 재난담당 공무원의 순환보직문제는 매우 심각하게 바라보고 개선을 고민해야 한다. 현장을 잘 아는 공무원이 오랜시간 지역의 위험 요소를 꿰뚫고 있을 때, 비로소 실효성 있는 예방 대책이 작동할 수 있다.

사명감에만 의존하는 안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재난관리 직렬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장기 근속을 유도하는 파격적인 인센티브와 처우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합당한 처우와 전문성 향상을 위한 지원이 뒷받침될 때, 공무원 조직은 비로소 재난의 방패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위험 지도를 꿰뚫고 있는 장기 근속 전문가가 현장을 지킬 수 있는 구조적 개선이 시급하다.

화학사고 통계의 숫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우리가 놓치고 있는 안전의 빈틈을 가리키는 준엄한 경고장이다.

첨단 기술과 법령이 아무리 촘촘해도, 결국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역량이다. 이를 운용하는 현장 인력과 행정 인력의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사람’의 역량과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화학사고와 환경 및 인명피해라는 악순환을 끊어낼 수 없다.

우리는 이제 현장의 전문가 육성과 재난공무원의 처우 개선 등 본질적인 “사람”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 안전 전문가들이 존중받고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화학사고 없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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