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기후공시 일감, 해외업체 쏠림 '비상'

입력 2026-03-29 17:10   수정 2026-03-30 00:38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의무화로 국내 기업들의 ‘해외 기후리스크 분석 플랫폼’에 대한 의존도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기후리스크는 기업의 전략과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치고 투자자의 의사결정에도 직결되는 ESG 공시의 핵심 지표다. 문제는 이를 평가할 수 있는 한국형 모델이 아직 없다는 사실이다.

29일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 자발적으로 ESG 공시를 하는 기업(지난해 기준 225곳) 가운데 90%가량이 주피터 인텔리전스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S&P글로벌 같은 해외 업체의 기후리스크 분석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플랫폼은 폭염이나 홍수, 산불과 같은 ‘물리적 리스크’와 탄소 규제 강화에 따른 ‘전환 리스크’를 시나리오별로 분석해 지표로 제시한다. 특정 지역에서 재해가 발생할 확률과 이에 따른 피해 규모, 탄소 규제로 인한 비용 증가 등을 정량적으로 산출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과거의 기상 자료와 지형 정보, 온실가스 배출 통계 등을 결합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이런 리스크를 정교하게 산출할 데이터베이스와 분석모델이 없다 보니, 상당수 기업이 해외 플랫폼을 구독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산업계에서는 해외 분석 모델의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 모델은 국내 실정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근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 교수는 “해외 업체들이 제공하는 모델은 ‘전 세계 모형’이라서 국내 지형에 적합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플랫폼의 기후리스크 시나리오 분석 범위는 25~200㎞ 단위로 설정돼 있는데, 한국처럼 좁고 복잡한 지형에 적용하기에는 단위가 너무 크다는 의미다.

한 기업의 기후공시 담당 관계자는 “국내 사업장에 대한 해외 플랫폼들의 데이터베이스와 모델링 기법이 매우 허술해 비용을 지불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전 세계 모형을 다루는 해외 플랫폼은 각 나라의 기후리스크 방재 시설 등이 최신판으로 업데이트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고 말했다.

비용이 과도하게 높다는 목소리도 있다. A기업은 한번 조사할 때마다 5500만원, B기업은 7000만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225개 국내 기업이 해외 플랫폼에 지급하는 비용이 연간 1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8년부터 자산 30조원 이상 대형 상장사를 시작으로 ESG 공시 의무화가 단계적으로 시행되는데, 전 상장사(지난해 기준 819곳)가 공시를 위해 해외 플랫폼을 이용할 경우 이 비용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국내 기업이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국가 기후리스크 분석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다. 올해부터 5년간 2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기업들이 내부데이터를 외부에 유출하지 않고 직접 입력해 분석할 수 있는 기술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국내 기업의 기후리스크를 제대로 계산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모형을 가져올 게 아니라 한국의 지형과 인구 등을 감안한 한국형 모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한 기후리스크 전문가는 “한국형 모델은 해안 인접 공장과 내륙 공장의 태풍 피해 차이, 고령 근로자 비중 같은 인구 구조적 특성까지 반영할 수 있어야 기업에 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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