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國 대표단 설득해 디스플레이 관세 年120억 아꼈죠"

입력 2026-03-29 18:13   수정 2026-03-30 00:08

서울 광화문과 명동 일대, 삼성동 코엑스 등에 설치돼 있는 옥외광고용 디스플레이는 TV와 PC, 모바일에 이은 ‘제4의 스크린’으로 불린다. 선명한 해상도는 기본이고 장기간 사용에도 뒤틀림이 없고 기후변화에도 강해야 해 상당한 기술력이 요구된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이기도 한 디스플레이 모듈이 지난 12일 세계관세기구(WCO)에서 ‘무관세’ 품목으로 최종 결정됐다.

결정을 이끌어낸 주인공은 재정경제부 산업관세과의 김지영 사무관(왼쪽)과 김세리 주무관(오른쪽). 2024년 9월 옥외광고용 디스플레이 모듈이 WCO 쟁점 품목이 된 후 1년6개월간 회원국들을 설득해 무관세 판정을 받아냈다. 국내 기업들은 연간 약 120억원의 관세를 절감할 수 있게 됐다.

WCO는 매년 두차례 품목분류위원회를 연다. 회원국이 특정 물품의 관세·비관세 여부에 대한 판단을 요청하면 위원회 논의를 거쳐 국제적으로 통일된 품목번호를 결정한다. 옥외광고용 디스플레이 모듈의 경우 완제품인 모니터로 분류되면 미국에 5%, 유럽연합(EU)에 14% 관세를 물어야 한다. 반면 중간재로 인정받으면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미국 등은 모듈은 그 자체로 영상신호 수신이 가능한 완제품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두 사람은 영상 신호 구조를 공부하고 모듈 구성도를 들고 다니며 “모듈 단독으로는 영상 구현이 어렵다”고 설득했다. 두 사람은 “첫 논의가 시작됐을 때 WCO 품목분류위원회에 참여하는 40여 개국 중 한국과 중국만 같은 입장이었다”며 “과반 확보를 위해 20개국 이상을 설득해야 했다”고 회상했다.

WCO 품목분류위원회는 최대 세 차례의 투표를 거친다. 한 국가라도 이의를 제기하면 투표는 무효가 되고 다음 투표를 진행해야 한다. 첫번째 투표 결과는 32(중간재):11(완제품). 하지만 미국의 이의제기에 2차 투표가 진행됐고 28(중간재):18(완제품)로 적지 않은 표가 완제품으로 넘어갔다.

지난 3월 마지막 3차 투표를 앞두고 변수가 생겼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말레이시아, 몽골 등 그간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국가 대표단의 비행편이 줄줄이 취소됐다. 김 주무관은 “각국 대사관에 연락해 ‘대표단이 직접 올 수 없다면 대사관 직원이라도 보내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최종 결과는 38대 11. 한국의 완승이었다.

재정경제부는 한국의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늘어나면 향후 품목 분류 논의를 주도할 수 있고 그만큼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사무관은 “수출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관세 분쟁을 선제적으로 예방하고, 주력 수출품목의 진흥을 도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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