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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물고기 가운데 사납고 먹성이 좋으며, 뾰족하게 생겼다고 하여 우리말로는 민물꼬치고기, 영어로는 파이크(pike)라고 불리는 어종이 있다. 과학자들은 이 파이크를 이용하여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포식자인 파이크를 큰 수조에 넣고 작은 물고기들과 함께 두자 파이크는 순식간에 먹잇감을 사냥하며 수조의 지배자가 되었다.그런데 연구자들이 수조 가운데 투명한 유리벽을 설치하고 파이크와 작은 물고기를 양쪽으로 분리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파이크는 여전히 먹잇감을 향해 돌진했지만, 보이지 않는 벽에 계속 부딪히며 상처만 입었다. 여러 차례 실패가 반복되고 상처가 쌓이자, 파이크는 결국 사냥을 포기하고 수조 한쪽에서 힘없이 떠다니기만 했다.
놀라운 일은 연구자들이 유리벽을 제거한 다음에 벌어졌다. 예전처럼 사냥할 수 있음에도, 파이크는 더 이상 먹잇감을 좇지 않았다. 눈앞에 먹이가 있는데도 유리벽이 있던 자리 너머로 나아가지 않았고, 결국 조용히 굶어 죽었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반복된 제약과 좌절을 경험한 이후, 그 제약이 사라진 뒤에도 심리적 한계가 행동을 지배하는 현상을 '파이크 증후군', 즉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불렀다. 인간 사회에서도 이런 상황은 드물지 않다. 반복된 실패나 처벌의 경험은 스스로의 판단과 행동을 위축시키고, 결국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든다.
법왜곡죄...'보이지 않는 유리벽'으로 작용해
문제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개인의 차원을 넘어 제도와 조직 속에 자리 잡을 때다. 특히 본질적으로 소신과 독립성을 요구하는 사법 영역에서는 그 영향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최근 도입된 법왜곡죄는 이런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법왜곡죄는 법관이 의도적으로 법을 왜곡해 판결하는 경우 형사처벌 하겠다는 취지다. 사법 신뢰를 확보하고, 명백한 위법 판결에 책임을 묻겠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제도가 언제나 입법자의 의도대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행동 변화를 유발할 것인지, 그리고 그 변화가 사법의 본질과 충돌하여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닌지 여러 가능성을 두고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법관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을 전제로 한다. 법관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실관계를 증거를 통해 재구성하고, 이를 전제로 법을 해석해 구체적인 결론을 도출한다. 그러다 보니 증거와 증명책임에 따라 사실인정이 달라질 수 있고, 유사한 사안에서도 법관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새로운 유형의 분쟁에서는 기존 판례를 넘어서는 창의적 판단과 소신이 요구되기도 한다.
따라서 사법은 애초에 정답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3인 재판부, 3심 제도, 나아가 대법원 전원합의체까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첨예하게 의견이 갈리는 것은, 판결이 절대적 정답을 기계적으로 맞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법해석을 바탕으로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만약 법관이 언제든 자신의 판단이 '왜곡'으로 평가될 가능성을 항상 의식해야 한다면 어떨까. 특히 그 판단이 형사책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면, 법관의 의사결정 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명확하다. 기존 판례에서 벗어나지 않고, 다수 견해와 충돌하지 않으며, 비판 가능성이 가장 낮은 안전한 결론만 택하는 것이다.
'안전한 판결' 압력 우려도
바로 이 지점에서 파이크 증후군이 떠오른다. 인간은 직접 경험뿐 아니라 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간접경험을 통해서도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학습한다. 악성 민원인의 공격, 정치적인 이슈로 인한 고발, 수사, 정치적 논란, 심지어 형사재판까지 이르는 상황이 반복되면, 법관들은 어느새 스스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설정하게 된다.
실제 처벌 여부와 무관하게, 고발과 수사의 가능성 자체가 강력한 신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자명하다.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과감한 법 해석, 새로운 법리 형성을 위한 진취적 판단, 다수에 맞서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소신은 사라질 것이다. 대신 사법은 안전한 다수 의견 뒤에 숨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영역으로 움츠러들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렇게 학습된 무기력은 언젠가 법왜곡죄가 폐지된다고 하여 쉽게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진정한 사법의 위험은 '오판' 아닌 '침묵'
사법의 신뢰는 단순히 '잘못된 판결을 처벌한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법관이 외부 압력 없이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다. 한 시대를 바꾼 새로운 법리와 판결은 언제나 파기의 위험, 당사자의 반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하며 등장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축적되면서 사회적 다양성을 아우를 수 있는 오늘날의 정교한 법체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만약 모든 판단이 '안전성'만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수많은 선도적인 법리 역시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법관이 두려움 없이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은 사법의 생명선과도 같다. 그런데 이러한 고려 없이 처벌부터 앞세운다면, 우리는 '오판을 줄이겠다'는 명분 아래 '도전적인 판결 자체를 사라지게 하는' 역설적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파이크는 유리벽이 사라진 뒤에도 끝내 사냥하지 않았다. 한 번 학습된 무기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 번 위축된 법관들의 판단 구조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사법의 진정한 위험은 '일부의 오판'이 아니라, '전체의 침묵'일지 모른다. 법관이 더 이상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지 않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위해 가장 무난한 결론만을 선택하는 상태, 그것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유리벽 속에 갇힌 사법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 그 유리벽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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