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에서 고속도로를 몇 시간 달려야 닿는 남쪽 끝 항구도시. 가는 길은 멀지만 고생은 금세 잊힌다. 벚꽃이 만개한 봉수로, 아기자기한 카페와 서점,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골목 곳곳에는 이 도시가 낳은 예술가들의 흔적이 스며 있다.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 그리고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도시 통영. 싱싱한 해산물로 이름난 맛집들과 푸르른 통영 앞바다의 풍경, 클래식 선율이 흐르는 열흘은, 클래식 팬들에게 특별한 봄의 추억이 된다.
'깊이를 마주하다(Face the Depth)'를 주제로 3월 27일부터 4월 5일까지 열린 2026 통영국제음악제가 막을 내렸다. 진은숙 예술감독이 이끄는 이번 음악제는 열흘간 26회의 공식 공연을 선보이며 전국의 음악팬들을 통영으로 불러 모았다. 관객 수는 작년 대비 약 5% 증가한 1만 5500여 명, 좌석 점유율은 82%에 달했다.
올해는 현대음악 작곡가 조지 벤저민 경, 바이올리니스트 아우구스틴 하델리히, 카운터테너 야쿠프 유제프 오를린스키가 상주음악가로 참여했다.

조지 벤저민 경의 작품은 앙상블 모데른과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연주했고, 하델리히는 리사이틀과 협연, 국내 젊은 연주자들과의 실내악 무대까지 소화했다. 오를린스키는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부터 폴란드 가곡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함께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공연과 피아노 리사이틀은 예매 시작과 동시에 전석 매진되며 뜨거운 관심을 입증했다. 아시아 초연 작품들도 축제에 긴장감을 더했다. 공연장 안팎에서 진은숙 예술감독과 이들 연주자들을 쉽게 볼 수 있었던 건 이 축제의 특별함이다.

이 밖에도 메조소프라노 플뢰르 바론, 모딜리아니 콰르텟, 베르비에 페스티벌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첼리스트 니콜라스 알트슈태트, 2025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 박수예, 루카스 & 아르투르 유센의 피아노 듀오, 김선욱 지휘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왕기석 명창의 수궁가, 재즈 연주자 미하엘 볼니와 에밀 파리지앵의 콘서트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무대가 펼쳐졌다.
축제의 상주음악가들은 폐막 이후 호평을 남겼다. 조지 벤저민 경은 "통영국제음악당의 뛰어난 음향과 축제의 예술적 방향성을 높이 평가한다"며 재방문을 기약했다. 오를린스키는 "이번 음악제에서 만난 관객들의 집중도가 놀라울 만큼 높았다"고 감사를 전했다. 열흘간 통영을 찾은 관객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연주자들의 탁월한 기량과 천상의 소리가 감동이었다"는 소감 등을 남겼다.

음악제 기간에는 본 공연 외에도 통영 시내 곳곳을 보는 재미가 넘쳤다. 3월 20일부터 4월 4일까지 진행된 '2026 통영프린지'에는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 4곳의 아티스트를 포함해 총 90팀이 참여해 글로벌 음악축제의 면모를 과시했다.
조지 벤저민 경의 포스트 콘서트 토크, 신진 연주자를 위한 TIMF아카데미, 차세대 음악가 포럼 '디스커버링 투모로우'도 함께 운영됐다. 공연이 끝나면 신선한 해산물로 저녁을 채우고, 해질녘 바다를 바라보며 공연의 여운을 느끼는 것도 통영국제음악제가 주는 특별한 매력이다.
축제는 끝났지만, 통영국제음악재단은 5월부터 굵직한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5월 5일),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5월 10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체임버 오케스트라(7월 4일),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8월 8일) 등 굵직한 공연이 펼쳐진다. 통영음악재단은 "연중 기획공연을 통해 통영을 거점으로 한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를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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