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광 필수코스 된 약국"...왜 외국인들은 'K-약'에 열광하나

입력 2026-04-12 19:45   수정 2026-04-12 19:46



서울 명동 거리. 화장품 가게와 의류 매장이 빼곡한 골목 사이 약국 간판이 끊이지 않는다. 한 블록에 서너 곳씩 붙어 있는 약국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진열대를 유심히 들여다본다. 계산대 위에는 연고와 각종 약을 담은 쇼핑 바구니가 쌓인다.



‘K-beauty’ 넘어 ‘K-pharmacy’로
을지로입구역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서자마자 ‘명동백화점약국’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거리로 나오기도 전에 약국이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관광의 시작 지점부터 약국이 자리 잡고 있는 풍경은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 한국 의약품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때 ‘올·다·무’(올리브영·다이소·무신사)가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쇼핑 코스로 불렸다. 이제는 ‘올·다·약’(올리브영·다이소·약국)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기념품을 사는 수준을 넘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국산 의약품을 목적을 가지고 찾아 나선다.

과거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는 ‘K뷰티’ 중심이었다. 최근에는 의약품과 기능성 제품까지 관심이 확장되고 있다. 외형만 꾸미는 제품을 넘어 효과와 효능을 기대하는 소비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화장품이 ‘이미지’에 가까웠다면 의약품은 ‘효과’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변화는 한국 제품 전반에 대한 신뢰가 ‘몸에 직접 사용하는 제품’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명동 레디영약국에서 미국인 잭(40대)이 아내를 위해 제품을 고르고 있다. 약국 바로 옆 올리브영 매장이 두 곳이나 붙어 있었지만 그는 약국으로 들어왔다.

“스킨케어 때문이에요. 뷰티랑 헬스를 따로 보지 않아요.” 그는 미국에서는 처방전이 없으면 약을 구매하기 어렵다는 점을 언급하며 한국의 접근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미국에서는 처방전이 없으면 약을 사기 힘들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죠. 그리고 한국 제품은 신뢰가 갑니다. 품질에 대한 의심이 없어요.” 그에게 약국은 단순히 약을 사는 공간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는 장소였다.

프랑스에서 온 프리실리아(35)도 비슷한 이유로 약국을 찾았다. “한국에 오면 화장품을 사야 한다고 다들 말해요. 그런데 올리브영뿐 아니라 약국도 같이 가요.” 그는 프랑스와 한국의 유통 구조 차이를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는 약국에서 이런 제품을 찾기 어렵고 화장품은 따로 사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약국에서도 스킨케어 제품을 살 수 있어 더 신뢰가 갑니다.”

이어 “약국에서 파는 제품은 더 의학적인 느낌이 있어 믿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화장품과 의약품이 명확히 분리된 유럽과 달리 한국에서는 두 영역이 맞닿아 있는 점이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약을 필요한 만큼만 살 수 있는 점을 한국 약의 큰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프랑스는 약도 코스트코처럼 사야 해요. 몇 알만 먹으면 되는데 굳이 박스로 사야 하는 게 얼마나 비효율적인데요”라며 한국에서 약을 사 가는 이유에 대해 덧붙였다.

일본인 관광객 가나미(30)는 소비 방식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코스메틱은 올리브영에서 사고 스킨케어는 약국에서 사는 일본인이 많아요.”

대만에서 온 10대 학생 쑹쯔우는 “대만에서는 화장품과 약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가마다 제품에 대한 인식과 소비 방식은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이 경계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는 점이 공통적인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입소문 타고 확산…제약사도 ‘체감’
효능에 대한 경험은 소비를 더욱 빠르게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루마니아에서 온 잭과 레베카 커플은 특정 제품을 사기 위해 약국을 찾았다. “어머니가 입술 상처에 유럽 연고를 발랐는데 일주일 넘게 걸렸어요. 그런데 한국 제품은 하루 만에 나았어요.”



이들이 찾은 제품은 신신제약 아시클로버 크림이다. 가족이 직접 경험한 효과가 구매로 이어진 사례다. 이처럼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효과를 기반으로 한 ‘지목 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실제로 일부 관광객은 가족이나 지인으로부터 제품 사진을 전달받아 그대로 구매하기도 한다.

이 같은 소비는 개인 경험을 넘어 SNS와 여행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에서 꼭 사야 하는 약”이라는 콘텐츠가 공유되고 여행 유튜버나 커뮤니티를 통해 특정 제품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면서 하나의 소비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과거 의류와 화장품 중심이던 한류 소비가 이제는 의약품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제약업계도 이런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유재웅 신신제약 차장은 “아시클로버 제품에 대한 현장 반응이 괜찮다는 것을 회사도 인지하고 있다”며 “특정 제품뿐 아니라 여드름 치료제, 흉터 연고 등 전반적으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관광객들이 뷰티와 스킨케어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화장품 매장을 넘어 약국까지 찾는 것 같다”며 “바이럴을 통해 제품이 알려지면서 실제 매출 확대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한증 치료제 등 기능성 제품까지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그는 “여행 인플루언서 등을 통해 ‘한국에서 꼭 사야 할 제품’으로 소개되면 인지도가 빠르게 올라간다”며 “국가별 플랫폼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현장에서 만난 관광객들 역시 이런 흐름을 뒷받침했다. 일부는 여행 커뮤니티나 SNS 추천을 보고 방문했다고 답했고 루마니아 관광객처럼 제품 사진을 직접 전달받아 구매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이는 의류나 화장품에서 보이던 소비 방식이 의약품으로까지 확대된 사례다.



박재욱 명동 레디영약국 약사는 외국인 소비 패턴을 이렇게 설명했다.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스킨케어 제품이 많이 나갑니다. 립밤 중에서도 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제품이나 바르는 미녹시딜 같은 제품이 대표적입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의 배경으로 한국에 대한 신뢰를 꼽았다. “결국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기 때문입니다. 제품에 대한 신뢰가 있으니까 약도 사가는 겁니다.”

한국에서는 일부 일반의약품을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규제가 엄격한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이런 접근성이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다만 우려도 존재한다. 약은 몸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만큼 신중한 사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 약사는 “국내 의약품은 제조 공정과 임상 절차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어 안전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외 반입과 관련해서는 “각국의 규정까지는 약국에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선을 그었다.

명동 거리에 늘어선 약국들은 이제 단순한 상업 시설을 넘어 관광 동선의 일부가 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더 이상 ‘예쁜 제품’만 사지 않는다. 효과와 신뢰를 기준으로 몸에 직접 사용하는 제품까지 한국에서 찾고 있다.

박정원 인턴기자 jason20147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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